엊그제 서거 5주기를 맞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다시 들쳐봤다. 그가 2009년 죽기 전까지 만 6년 동안 구술한 것을 옮긴 이 책은 1200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그러나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를 생각하면, 또 그의 삶과 겹치는 한국 현대사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조차도 너무도 얇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두꺼운 책에서 내가 뭉클했던 대목은 그가 치열한 반독재투쟁에서 보여준 불굴의 용기라든가 100만 군중 앞에서의 사자후라든가 기어코 햇볕정책의 신념으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연 업적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린 시절 무척 겁이 많아 밤에는 혼자 화장실에 못 갔다는 고백, 연금 당하고 있던 동교동의 집에서 마당에 날아오는 새들에게 먹이를 주며 친구로 삼는 장면, 옥중에서 미래를 대비하며 책을 읽으면서도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과 공포에 두려움에 떨었다는 토로였다. 여리고 섬세한 마음을 가진 '인간 김대중'의 면모였다.
내게는 그래서 이 책은 '거인' 김대중의 회고록이 아니라 무엇보다 겁 많고 여린 심성의 소년이 어떻게 비범한 정치인으로 우뚝 서게 됐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기'로 읽혔다. 그는 완성된 인간이 아닌 노력하는, 그래서 번민하는 인간이었다. 자질 이상의 노력과 고뇌가 그의 성취를 낳았고, 아마 그래서 '인생은 아름답다'는 유언을 남기고 떠난 것인지 모른다.
김대중의 정치적 계승자인 야당의 정치인들은 아마 대부분 '김대중 자서전'을 읽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존경은 하지만 그처럼 사는 것, 그로부터 배우려는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처럼 산다는 것이 김대중처럼 큰 족적을 남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모두가 김대중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김대중처럼 노력하고 공부함으로써 또 다른 김대중, 아니 그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의 가장 뛰어난 점, 늘 새로운 지식에 목마른 사람처럼 항상 메모하고 공부했던 그 노력을 본받음으로써 김대중 아닌 김대중이 되는 것이다.
김대중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갖고 있는 야당을 보면서 자신들의 지리멸렬의 큰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 책을 다시 제대로 읽을 때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럴 때 야당은 '김대중의 부재'를 더 이상 애석해하지 않게 될 듯하다. 그처럼 공부하고 노력함으로써 김대중을 늘 곁에 두는 길을 찾게 될 듯하다.
이명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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