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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떠난 자리,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것인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34초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온 국민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벽안의 '파파'에 열광했다. 4박5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여정은 우리를 마치 '아이돌스타'의 공연장에 초대한 것처럼 흥겨움과 감동, 흥분, 기쁨으로 넘치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분단된 나라, 세월호 참사 등으로 힘겹고 지친 사람들에게 청량제 같은 위로, 치유의 시간을 갖게 했다.


특히 따뜻하고 온화한 몸짓, 파격적이며 형식에 구애됨 없는 소통 방식은 갑갑한 국민의 가슴에 깊게 파고 들었다. 교황은 미사, 강론, 편지, 오찬, 기도, 세례는 물론 포옹과 입맞춤 등 몸짓으로 인종, 종교, 이념의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온 국민에게 다가왔다. 이에 교황의 소통언어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 공정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법"을 일깨웠다.

그러나 교황의 말과 행동에 국민들은 열광하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따라서 4박5일은 열광과 흥분만이 아니라 도대체 우리 사회가 무엇이 문제길래 온통 교황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는지 반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과연 교황이 떠난 이후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것인가."


◇ 교황 열풍은 무엇 =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의 리더십 부재를 꼬집었다. 이홍로 계명대 교수는 "물질 만능과 성장제일주의, 사회 재부를 독식하려는 탐욕, 양극화 등 수많은 문제에 지친 때문"이라며 "소통하고 대화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교황의 인간미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도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 돈만 챙기고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지 않는 부유층, 신뢰할 수 없는 정부 등 지도계층의 리더십 부재가 한국사회를 절망에 빠뜨렸다는 지적이다.

또한 경제 양극화, 경쟁 심화 등으로 경제 발전에도 더욱 살기 어려워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강우일 주교는 "교황의 방문은 힘겹고 절망스럽고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 현실과 물질을 경배하며 일시적인 편안함에 안주한 사회 풍토에 교황의 경종이 파고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갈등의 한복판에서 신음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만나고 챙겼다. 그 중에서도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관심은 방한 내내 이어졌다. 14일 방한 첫날, 공항에서 만나고, 다음날 대전 '성모승천대축일'에 이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미사', 17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교황청 대사관에서의 세례식, 세월호 실종자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등에서 약자와의 연대감을 확고히 드러냈다. 제병영 신부는 "연대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라며 "고통받는 이들과의 연대는 프란치스코 정신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연대 정신은 마지막 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초청자들의 면면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미사에는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 송전탑 반대 밀양 주민들, 용산 참사 피해자, 새터민, 납북자 가족 등 우리 사회에서 갈등이 집약된 이들을 불러 위로하고 어루만졌다.


그간 한국 사회는 도덕성의 실종, 권력의 횡포, 리더십 부재. 문화예술 경시 등으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줄 기반이 무너져 내렸다. 이에 따라 불평등과 반목, 박해 등 부조리한 현상들이 만연해 청년들이 갈 길을 잃고 거리를 헤메고, 노인과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로 전락했다. 이에 윤석민 한신대 교수는 "교황 방한으로 우리 사회의 모순이 일거에 드러났다"며 "각자 본연의 정신을 회복하고,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황이 남긴 메시지 = 교황은 행동으로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모순을 드러내고, 직설적이며 간결한 말로 한국 사회에 감명을 줬다. 분단된 나라에 통일의 해법을 주고, 갈등과 반목이 있는 곳에는 경고와 질타를 하고, 병들고 지친 이에게는 위로를, 힘든 이에게는 격려를, 약자에게는 건강한 회복을 얘기했다.


여러 메시지 중에서 울림이 큰 키워드는 '사랑', 평화', '화해', 정의' 등으로 요약된다. 방한 첫날 교황은 청와대에서 열린 '공직자와의 대화'에서 "평화란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며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에 영화 '명량'으로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킨 김한민 감독은 "교황은 분단으로 촉발된 남북 갈등, 빈부격차로 인한 계층 갈등, 지역 갈등 등으로 심한 분열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에 화해의 메시지를 남겼다"며 "치유의 방법은 교황이 가르쳐 준대로 수없이 상대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교황은 작은 몸짓과 행동으로 '인간의 존엄함'을 일깨웠다. 가장 울림이 컸던 것은 16일 '음성 꽃동네' 방문이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생명으로 채 자라지 못 하고 스러진 태아들에게까지 기도하고 경배했다. 이어 장애인들을 만나 하나같이 포옹하고 쓰다듬으며 약자를 보호해야할 사회적 의무를 일깨웠다. 교황은 공직자의 자세와 관련,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고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어느 곳에서든지 진심 어린 대화로 수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소통하고 대화하는 방법도 일러줬다. 사회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험담만 하지 않아도 성자가 될 수 있다"고도 했고, 젊은이들에게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밀쳐내지 말고 살라"고 충고했다. 또한 대화하려는 자세는 "공감하고 진지하게 수용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웃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삶이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것이어서 서로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한다"고도 했으며 수도자들에게는 "봉헌된 사람(수도사)들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칠 수 있으므로 순전히 실용적이고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려는 유혹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생각하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장 큰 마지막 메시지는 '분단된 나라에 전한 화해의 방식'이다. 18일 교황은 방한 마지막 일정으로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죄 지은 형제들을 아무런 남김없이 용서하라"며 분단국가인 남북한이 서로 간 무력충돌과 반목을 중단하고 진심 어린 대화로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을 주문했다. 이어 교황은 "만일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강우일 주교는 "정의가 결여된 까닭에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났다"며 "한반도의 평화는 서로를 바라보는 형제적 시선을 펼치는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안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때 그 강물은 동서남북으로 흘러 평화의 바다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각계 각충은 교황 방한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정신적 변화를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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