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故 윤지충(1759~1791) 바오로 등 124위의 순교자들이 복자로 시성되는 시복식이 3시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16일 행사가 개최되는 광화문 광장 인근은 시복식과 교황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한 신도들의 설렘과 떨림으로 가득 찼다.
이날 오전 10시에 열리는 시복식에 참가하기 위한 신자들의 행렬은 이른 새벽부터 이어졌다. 평소 한산했던 지하철 1호선 첫차도 인천·경기 지역에서 교황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행사가 개최되는 광화문 인근 종각역 2번 출구 앞도 이곳을 찾은 참여객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시복식을 위해 새벽 4시30분께 첫 차를 타고 인천에서 출발했다는 김미옥(46·여)씨는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 순교자 124명이 한 번에 복자가 되는 드문 시복식인 만큼 기대가 크다"며 "특히 교황님께서 직접 시성식에 참여하시는 데다 여러 사고로 우리 사회가 어려운 만큼 우리 사회에 큰 깨달음을 주실 것이라 생각 한다"고 말했다.
안전을 위해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길목 곳곳엔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금속탐지기 등이 설치됐다. 금속탐지기 앞에는 행사장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초청된 신자들의 목에는 17만명에 달하는 입장객 확인을 위한 증명서가 패용 돼 있었다.
광화문 현장에서는 수도권 외 지역에서 상경하는 신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영·호남 등 상대적으로 먼 지역에서 시복식을 찾은 신도들은 전날 저녁부터 출발해 시복식 현장에서 교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밤 10시께 경남 거제시에서 출발했다는 위기섭(60) 장평성당 신자회장은 "어젯 밤 같은 성당 신자 85명과 함께 출발해 새벽 5시에 도착한 뒤 (시복식을) 기다리고 있다"며 "오늘은 천주교를 믿다가 목숨을 잃으신 124위 순교자들을 복자로 시성하는 감개무량한 날이자, 평생 한번 보기 어려운 교황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마음이 벌써부터 설렌다"고 말했다.
이날 시복식에 참여하기로 한 '세월호 유가족'과 관련한 이야기도 나왔다. 위 회장은 "세월호 사고로 마음이 많이 아픈 와중에 600여명의 유가족들이 이번 시복식에 참여한다고 들었다"며 "유가족과 신자들이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교황님께서도 좋은 결정을 내려 주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시복식 정식으로 초청되지는 못했지만 교황의 모습과 행사을 지켜보기 위해 광화문 인근을 찾은 시민들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길목마다 신자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초청된 신자·시민들이 입장할 수 있는 행사장에 비해 공간이 협소하고 행사를 지켜보기도 어려워 보였다. 청계광장 구석에서 만난 서울 용산구 주민 이정미(50·여)씨는 "초청을 받지는 못했지만 교황님의 모습을 뵙기 위해 새벽부터 광화문을 찾았다"면서도 "시복식을 잘 (지켜)보기 위해서 입구부터 샅샅이 뒤졌지만 좋은 자리를 찾지 못해 조금 아쉽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한편 최대 100만명의 신자 및 시민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시복식인 만큼, 이색적인 광경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광화문 인근에 자리한 편의점들은 손님들이 붐빌 가능성에 대비하고, 또 펜스로 인해 편의점을 찾을 수 없는 참여객들을 위해 야외 매대를 설치했다. 물티슈·커피·음료수 등 소소한 물건을 파는 야외 매대에서는 펜스로 격리된 손님들을 위해 '배달'서비스까지 진행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