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1. 강일출 '어머니 친구집 숨었다 돌아오니 순사가…'
경상북도 상주에서 12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강일출(86) 할머니는 16세 늦여름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張春)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당시 마을에는 '처녀공출'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강 할머니는 이를 피하기 위해 어머니 친구 집에 머물기도 했었다. 가족 품이 그리워 다시 집에 돌아온 것이 화근이었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외딴집으로 칼을 찬 일본 순사와 누런 옷을 입은 황군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강 할머니에게 베를 짜는 공장에 가자며 강제로 짐을 싣는 트럭에 태웠다.
1945년 초여름 강 할머니는 독립군의 도움을 받아 어룬춘(鄂倫春)으로 피신했다. 두 번 결혼을 했으나 모두 이혼했다. 22세부터 53세까지 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다. 1998년 적십자를 통해 해방 후 처음으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
1999년 71세의 나이로 영구 귀국해 이듬해 국적을 회복했다. 강 할머니는 현재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2. 곽○○ '국적도 없이 중국서 60년 떠돌이 생활'
곽○○(89) 할머니는 19세에 동네 뒷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중국 위안소로 끌려갔다.
중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겪은 곽 할머니는 이후 60여년을 중국에서 무국적자로 살아야했다. 곽 할머니가 다시 대한민국 국적을 얻는 것은 2004년. 곽 할머니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56년 만에 국적을 회복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곽 할머니는 광주에 있는 여동생의 집에 머물며 밭에 나가 일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가벼운 치매증상과 허리 종양으로 인한 요통 탓에 전라남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3. 공○○ '비단공장 취직시켜 둔다더니…'
전라남도 무안 출생의 공○○(94) 할머니는 16세이던 1935년 비단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평양을 거쳐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하이청(海城)의 위안부로 강제동원됐다.
이후 하이청과 상하이(上海), 하얼빈(哈爾濱) 등에서 3년여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당시 연을 맺은 전라남도 보성 출신 남자와 1945년 전라남도 해남으로 귀국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미안한 마음에 결국 헤어졌다. 이후 28세에 공 할머니보다 20세가 더 많은 박모씨와 혼인했다.
34세의 나이에 박씨와 아들을 낳았다. 같은 해 남편 박씨가 죽었다. 이후 공 할머니는 36세에 당골(무당)이 됐다. 1958년 당골 하는 남자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 하지만 딸은 3년 뒤 물에 빠져 사망했다. 공 할머니는 현재 아들 내외와 손녀들과 함께 전라남도 해남에서 살고 있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시리즈 중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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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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