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는 여름 꽃이다.
날이 더워진다 싶으면 어느새 꽃을 달기 시작해, 여름의 끝자락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질 무렵까지 줄기차게 새 꽃을 피운다.
능소화는 꽃이 한창일 때, 시들기 전에 내려놓는다. 그래서 꽃이 진 언저리까지 늘 정갈한 자태를 유지한다. 큼지막한 주황색 꽃은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기품을 풍긴다.
꽃은 가지 끝에서 자란 꽃대에 열 송이 안팎 달린다. 작은 꽃자루들이 엇갈려 갈라지면서 나팔 같은 꽃을 매단다.
능소화는 나무나 담, 벽을 타고 올라간다. 시골 토담을 넘어 피어나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능소화 꽃은 담으로 둘러쳐진 경계를 허문다. 마음을 밝고 편하게 해준다.
덩굴식물이어서 금등화(金藤花)라고도 불린다. 나팔 모양 덕분에 서양 사람들에게서는 차이니스 트럼펫 크리퍼(chinese trumpet creeper)라는 이름을 얻었다.
중국이 고향이다. 중국에서도 장쑤성(江蘇省)에 가장 많다. 장쑤성은 아열대성 기후를 나타낸다. 능소화는 추위를 견디는 힘이 약하다. (이유미ㆍ'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가지')
능소화가 좋아, 10년쯤 전에 화원에서 능소화를 구해 아파트 베란다에 들여놓았다. 화분에서 지지대를 타고 올라가며 자란 능소화는 바야흐로 피어날 꽃봉오리를 줄줄이 달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능소화는 벌어지지도 않은 꽃을 맥없이 떨구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어린 꽃봉오리를 보면서 집 안에서 능소화를 감상한다는 욕심을 접어야 했다. 그 능소화는 아파트 화단에 옮겨 심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온난화에 따라 서울이 따뜻해져서인지 이제 서울 곳곳에서도 이 꽃을 볼 수 있다. 한강 둔치 길의 벽 여러 곳에 능소화가 피었다. 집에서 기르는 일은 실패했지만 집 밖 도처에서 활짝 피어난 능소화를 완상할 수 있으니 마음이 넉넉하다. 도시의 담장 아래, 혹은 벽을 따라 능소화를 심은 이에게 감사를 표한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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