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외국인교육기관 내국인 비율 80%넘어…입학자격 강화 필요해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국제학교, 외국교육기관, 외국인학교 등 '외국어 특례 학교'에서 내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대부분 80%를 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학교가 사실상 '내국인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는 얘기다.
31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의 외국어 특례 학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제학교는 현재 제주도에 3곳(KIS Jeju, NLCS Jeju, BHA), 외국교육기관은 송도와 대구에 2곳(송도채드윅국제학교, 대구국제학교), 외국인학교는 전국에 51곳이 운영중이다. 국제학교와 외국교육기관, 외국인학교는 법적으로 다른 개념이지만 일반적으로 '국제학교'로 통칭되고 있다. 그러나 사걱세의 조사 결과 실제로는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을 위한 교육기관처럼 변질되고 있다. 2012년 기준 국제학교, 외국교육기관의 내국인 비율이 대부분 80%를 넘었으며(KIS Jeju 98.6%, NLCS Jeju 94.5%, 송도채드윅국제학교 82.3%) 나머지 학교들도 내국인 비율이 50%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내국인 비율이 높은 것은 재학생 숫자가 아닌 정원을 기준으로 내국인학생 입학 제한 비율이 정해져 있는 관련 법규의 허점에서 상당 부분 비롯되고 있다. 외국인학교는 원칙적으로 '부모 중 한 명이 외국인'이어야 입학할 수 있지만 정원 미달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가 많아지자 정부는 내국인도 외국 거주기간이 3년 이상만 되면 입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내국인 학생의 비율을 정원의 30∼50% 이내로 제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원 대비 기준을 피해가는 편법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무자격 내국인 학생의 외국인학교 입학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A외국인학교는 학생 정원을 975명으로 신고했지만 실제 재학생은 81명(외국인 38명, 내국인 43명)이었다. 이 학교는 내국인이 더 많지만, 정원 대비 비율로 따지면 4.4%에 불과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외국인학교에 내국인학생들이 많은 이유는 이들 학교가 초ㆍ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각종 특례를 받으며 외국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면서도 국내학력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부유층 자녀들이 손쉽게 명문대에 진학하는 코스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귀족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학비가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는데도 내국인 입학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광호 함께여는교육연구소 소장은 "상류층이 중산층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연간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국제학교와 외국교육기관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면서 "기존에 특목고를 통해 '구별짓기'를 감행하던 상류층이 이제는 다른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제학교에 대한 관리ㆍ감독을 강화하고 내국인 입학 자격 등의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정 계층을 위한 학교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공교육 틀 안에서 다양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사걱세 관계자는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 자격을 외국 거주 3년에서 5년으로 높이고, 외국교육기관ㆍ외국인학교는 설립 취지에 맞춰 내국인 입학 비율은 하향 조정하며 국내 학력 인정을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형태 전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은 "교육선진국들이 대부분 수직적 다양화 대신 수평적 다양화를 꾀하고 있으며, 우리 역시 분리교육 대신 통합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면서 "외국어 영재를 위한 특별한 학교를 따로 두기보다는 일반중학교 안에서 외국어 영재를 키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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