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데스크 칼럼] 마이스터트룽크, 생명의 원샷

시계아이콘01분 31초 소요

[데스크 칼럼] 마이스터트룽크, 생명의 원샷 허진석 스포츠레저 부장
AD

로맨틱 가도(Die Romantische Straße).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고도, '로맨틱한 길'이라고도 한다. 뷔르츠부르크에서 퓌센까지 약 360㎞, 그 사이 크고 작은 마을 20여개가 보석처럼 박혔다. 천년 고도 뷔르츠부르크, 백조의 성이 자리 잡은 퓌센, 그리고 중세의 향기를 간직한 '타임캡슐' 로텐부르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진주한 미군 가족들이 전쟁의 참화를 면한 이 지역을 여행하면서 독일의 대표적인 여행상품이 됐다고 한다.


한국 관광객들은 백조의 성을 좋아한다. 영화 '미녀와 야수'의 무대로서 디즈니랜드에 영감을 준 아름다운 성. 반면 일본 관광객들은 로텐부르크로 몰려간다. 얼마나 로텐부르크를 찾는 관광객이 많은지, 대부분의 상점에서 일본어 안내문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독일에는 로텐부르크가 여러 곳 있다. 니더작센주(로텐부르크 안 데어 메), 헤센주(로텐부르크 안 데어 풀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로텐부르크 암 네카), 바이에른주(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 등. 바이에른주의 로텐부르크가 바로 로맨틱 가도에 있는 성곽도시다. 면적은 41.45㎢로, 우리 낙안읍성(22.31 ㎢)의 두 배쯤 된다.


오후 세 시. 관광객들이 도심에 있는 마르크트 광장에 모인다. '포도주 마시는 인형'을 보기 위해서다.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매시 정각 시의원 회관 벽에 걸린 시계 좌우의 창이 열리고 인형들이 나타난다. 인형들은 30년 전쟁(1618~1648년) 때 도시를 점령한 틸리 장군과 느슈 시장의 일화를 재현한다. 30년 전쟁은 신ㆍ구교의 전쟁이다. 구교도인 틸리 장군은 도시를 불태우고 신교도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느슈 시장은 자비를 청했다. 그러자 틸리 장군은 기상천외한 제안을 한다. 포도주 한 통(3.25ℓ였다고 한다)을 단숨에 마시면 명령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은 포도주를 '원샷'했다. 술을 못했다고도 하고, 고령이었다고도 한다. 그는 도시와 시민을 살린 다음 3일 동안 인사불성이 됐다. 로텐부르크에서는 매년 6월 '마이스터트룽크'라는 축제를 열어 당시를 기념한다.

광장 한편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와인 대신 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마이스터트룽크(Meistertrunk)는 '위대한 들이킴'이라는 뜻이다. 나는 '생명의 원샷'이라고 부르고 싶다. 틸리 장군은 로텐부르크를 살육하고 싶지 않았을지 모른다. 느슈 시장은 자비를 청하면서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다. 포도주에 입을 대는 순간, 아니 자신을 던지기로 작정한 순간 느슈는 곧 로텐부르크다. 그것이 지도자의 숙명이고 리더십의 본질이 아닐까.


AD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은 떠들썩하다. 토너먼트 대회에서 챔피언을 빼면 모두 패배자다. 실패한 감독들은 대부분 자리를 위협받았다. 비판과 압력을 대하는 감독들의 자세는 천차만별이었다. 브라질의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이탈리아의 체사레 프란델리 같은 감독은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며 물러났다.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는 심판에게 책임을 돌렸다. 우리 대표팀 감독도 어렵게 물러났다. 시작할 때 자신을 던지지 않은 사람은 끝낼 때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트 광장의 벽시계는 명성만큼 대단하지 않다. 인형들의 동작도 불분명해서 '그렇다 치고' 봐야 실망을 줄일 수 있다. 느슈 시장이 잔을 기울이다 말고 슬쩍 틸리 장군의 눈치를 보는 순간이나 시장을 흘겨보던 틸리 장군이 문득 "그만하면 됐다"는 듯 고개를 까딱하는 순간은 아마도 내 상상 또는 희망이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 찡함. 로텐부르크에서.






허진석 스포츠레저 부장 huhbal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