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동안 우린 무엇을 했나…지금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세월은 가도 세월호는 진행형
날짜·시간대별로 다시 새긴 '최악 참사의 기록'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이토록 괴롭지만 귀한 것인 줄 몰랐다.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도 '세월' 앞에서 무뎌지고 마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나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열 명이나 있고, 세월호로 드러난 문제들은 해결을 미룬 채 시간의 뒤편으로 슬금슬금 달아나려 한다. 온 국민을 그토록 절망하게 한 세월호는 무엇이었나. 오는 24일이면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 그 100일의 뼈아픈 궤적과 지금, 그리고 다음의 일들을 칼로 새기듯 적어 놓는 일은 지금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이 아닐까 한다.
지금,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는 손바닥 지문과 함께 '바람으로 오소서'라는 리본이 달린 풍경이 울고 있다. 구리 종 아래에 매달린 청동 물고기만 바람을 타고 댕그랑댕그랑 소리를 내며 헤엄을 치고 있을 뿐이다. 또 한쪽에는 실종자 열 명의 이름이 크게 적힌 노란 깃발이 바람에 날린다. 97일이 지났지만 세월호의 모든 격실을 다 살피지도 못했다. 수색을 마친 구역에서 실종자 1명이 발견되자 111개 모든 격실을 다시 진입해 재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오늘부터 7월 임시국회가 한 달 일정으로 문을 열었다.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의 입장차가 팽팽하다. 핵심은 수사권 부여 문제이다. 야당은 특별사법경찰관에게 수사권을 주자는 입장이고, 여당선 상설특검이나 특임검사를 대안으로 내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그리고 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100일이 되는 24일까지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7일째 벌이고 있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희생자 100일 추모제(안산시 불교연합회 주관)는 유족들의 요청으로 취소되었다.
기억. 이제 다시 세월호를 기억한다. 4월15일 오후 9시 인천항을 출발하려던 세월호는 짙은 안개 때문에 2시간가량 서 있었다. 안개는 다음 날 일어날 참사를 알고 있었던가. 16일 오전 8시52분 전남소방본부 상황실에 첫 신고가 들어왔다. "배가 기울고 있습니다." 오전 9시30분 목포해경 경비정 123함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로부터 2시간이 채 안 된, 오전 11시18분 배는 앞쪽 머리부분만 남기고 사실상 침몰했다. 2분 뒤 경기교육청 대책반은 "단원고 학생들을 전원 구조했다"고 말했다. 16일은 그렇게 상황 파악도 안 된 채 흘러갔다.
4월17일이 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0시 현재 사망자가 6명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사망자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오후 4시20분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를 찾았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튿날인 4월18일 오전 11시50분 세월호는 머리부분까지 모두 잠겨 완전 침몰했다. 오후 3시38분 민ㆍ관ㆍ군 합동구조팀이 선체 2층의 화물칸의 문을 열고 처음으로 진입했다. 2분 뒤 단원고 강민규 교감이 진도체육관 인근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오후 11시50분 객실에서 단원고생 시신 3명을 수습한다. 4월20일 오전 7시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대교에서 총리 면담을 요청하며 농성을 벌였다. 27일 오전 10시. 정홍원 총리는 참사에 모든 책임을 지고 사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5월이 되었다. 1일 오전 3시20분 다이빙 벨 투입을 했으나 실패했다. 2일 오전 6시30분 침몰지점 남동쪽 2㎞ 지점서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배에서 이탈해 흘러간 시신에 대해 비상이 걸렸다. 4일 대통령이 다시 진도를 방문했다. 6일 6시5분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가 수색작업을 벌이다 숨졌다. 7일 오후 8시20분엔 해경 항공대원이 대기 중 쓰러졌으나 의식을 찾았다. 10일 오전 0시53분 시신 1구를 다시 수습했다. 12일엔 유족대표단이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안산에서 진도로 내려왔다. 16일 오후 3시45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세월호 가족 대책위 대표단과 면담했다. 17일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19일 대통령은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한다. 2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세월호 진상규명 국정조사계획서를 통과시켰다.
6월이 왔다. 2일 국정조사특위가 처음으로 열렸다. 4일 보름 만에 실종자가 추가 발견된다. 사망자는 모두 289명으로 늘어났다. 10일 선장 등 세월호 관련 피고인 15명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18일 경기도 교육청은 단원고 교장을 직위해제했다. 24일 오전 1시3분 선체 4층 통로에서 여성시신 1구를 찾아냈다. 26일 실종자 가족들은 총리가 유임되자 "실종자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수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한다.
7월1일 111개 격실 중 107개를 수색했다고 발표했다. 8일 태풍 너구리가 북상하자 배 주위에 그물망을 쳤다. 14일 유가족 대책위원회 등 가족 15명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15일 단원고 학생 46명과 학부모 10명 등 56명이 안산에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18일 다시 시신 1구를 찾았다. 이제 실종자는 10명이 남았다.
세월호는 끝난 참사가 아니다. 실종자 수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최악의 참사를 만든 원인을 밝히는 일도 그것을 풀어갈 대책을 세우는 일도,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실종자를 비롯한 유가족들의 가슴에 담긴 참담과 트라우마도 치유해줘야 한다. 이번에 세월호를 제대로 풀어놓지 않으면 또다른 세월호가 더 큰 괴물로 나타날지 모른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