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차두리(34·서울)는 팔색조다. 팔팔한 현역선수이자 방송 해설위원으로, 때론 후배들을 대변하는 고참으로서 뛰고 말하며 한국 축구를 정의한다. '길었다 짧았다'를 반복하는 헤어스타일처럼 변화를 마다하지 않는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직언도 스스럼없이 한다. 말수는 적지만 그의 이야기는 가볍지 않다. 어떤 자리에 서도 어색하지 않게 제 몫을 해낸다.
17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2014 K리그 올스타전 공식 기자회견. 박지성(33), 이영표(37) 등 쟁쟁한 스타들 틈에서도 차두리의 존재감은 빛났다. 재치 있는 입담과 뼈 있는 쓴 소리를 섞어가며 다양한 주제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족집게 해설로 유명세를 타 '문어'라는 별명을 얻은 이영표에게 관심이 쏠리자 '문어는 본인'이라고 운을 떼며 "축구를 잘 보는 건지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다음 월드컵에서도 기대해 보겠다"고 받아친다. 결혼을 앞둔 박지성을 향해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경쟁보다 어려운 것이 결혼 생활이다. 힘든 곳에서도 살아남았으니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며 웃어넘겼다.
국내 축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날카롭다. 뒤로 물러서거나 읍소하지 않고 현실을 꼬집는다. "K리그 클래식 선두인 포항에서 올스타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어리지만 굉장히 좋은 선수들이 수면 아래 있는 느낌이다. 많은 관심과 질책으로 이들이 빨리 성장하고 단단해져야 경쟁력이 생긴다."
차두리는 10년 넘는 프로선수 생활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다. 국내 축구에 대한 소신을 전하기에는 핸디캡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FC서울에 입단해 1년 넘게 K리그를 접하면서 이러한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 단순히 은퇴 전 국내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의 복귀가 아니다. 여전히 그는 왕성하게 그라운드를 달린다. 경기장에서도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향한 경험에 풀백과 측미드필더를 병행하며 전술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올스타 팬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한 것도 단순한 이름값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용수 FC서울 감독(41)은 "차두리는 자신을 대신해 월드컵에 나가는 후배들을 격려할 만큼 그릇이 큰 친구다. 앞으로도 한국 축구를 위해 할 일이 많다"며 애정 어린 조언을 했다. 후배들과 한국 축구를 생각하는 차두리의 조언은 꽤나 울림이 있다.
"경기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은 선수들의 도리다. 나머지는 운영자와 팬들의 몫이다. 특히 축구계에 힘 있는 분들이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축구만 보고 열심히 뛰는 선수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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