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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 불편한 진실]국민 '절반' 대상…공직자 부인 5만원 지갑 선물받으면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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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직 공무원 뿐만 아니라 하위직 공직자,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까지 법 대상
-최대 1570만명…국민 '절반'이 법 테두리에 들어와


[아시아경제 전슬기 기자] "공직자는 커피 한 잔도 얻어먹으면 안되는 건가요?" 김영란법은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해소하는 법안이지만 법의 영향을 받는 사람은 최대 157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공직자라고 떠올리는 정치인, 장ㆍ차관들 뿐만 아니라 하위직 공무원과 그 가족들까지 '국민의 절반'이상이 김영란법 테두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영란법이 통과될 경우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국민 전체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영란법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봤다.

#강원도 춘천시에 소재한 한 재단법인에서 일하는 직원 A씨의 부인은 최근 업무상 알게된 B씨로부터 5만원 가량의 지갑을 선물받았다. A씨는 부인에게 이 사실을 들었지만 따로 신고를 하거나 돌려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A씨는 그 후 5만원의 5배가 넘는 25만원 상당의 과태료를 물었으며 인사위원회에서 징계가 예고돼 불안에 떨고 있다.


-A씨가 25만원 상당의 과태료에 인사 불이익까지 받에 된 것은 A씨가 김영란법 적용 대상 범위 안에 들기 때문이다. 지방에 있는 조그마한 재단의 직원이지만 A씨는 김영란법에서 금품 수수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공직자에 해당된다. 김영란법은 지방 공무원, 공기업ㆍ지방공사ㆍ공단ㆍ출자출연기관 등 공직유관단체 직원 등도 적용 대상이 된다. 아울러 부인이 받은 것이지만 A씨가 처벌을 받게된 것은 '부인'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인 공직자의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에 해당돼서다. 또한 김영란법 원안은 사교ㆍ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선물은 허용하지만 그 대상은 사회적 관계에 기인한다. 업무상 만난 사이는 사회적 관계라 볼 수 없으며 접대 상한선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데, 3만원 정도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한 구청에서 건축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B씨는 최근 고교 동창으로부터 12만원 호텔 코스 요리를 얻어 먹었다. 동창은 자신이 근무하는 기업에서 승진한 것을 기념해 친구들에게 한 턱을 낸 것인데, B씨는 호텔 요리를 얻어먹은 것으로 인해 과태료 물고 직장으로부터 징계를 받게 됐다.


-B씨가 고교 동창인 사회적 관계에게 밥을 얻어먹었음에도 처벌을 받은 이유는 비싼 밥값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학교 동창, 회사 동료, 고향 친구 등 사회적 관계에서 받은 금품은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B씨의 경우 건축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사회적 관계로 보기에는 12만원 상당의 비싼 밥을 얻어 먹었기 때문에 직무관련성과 상관 없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서울대병원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관리자 C씨는 결혼을 하지 않고 같이 사는 딸 D씨가 보건복지부에 취직한 소식을 듣게 됐다. 어렵게 구직활동을 하다 취업에 성공한 딸이지만 두 부녀는 김영란법에 따라 이해충돌이 되기 때문에 둘 중 한 명은 직업을 그만두거나 부서를 옮겨야 했다. 결국 C씨는 딸 D씨를 위해 이직을 선택해야만 했다.


-C씨가 딸을 위해 이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김영란법의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이해관계가 있는 공직자의 업무에 가족이 근무할 경우 그 업무를 회피하도록 돼 있다. 그 범위는 '금품 등 수수 금지'보다 좀 더 좁다. 이해충돌 방지가 적용되는 경우는 배우자와 부모, 자녀로 한정된다. C씨는 딸과 이해충돌 관계에 놓인 것을 두고 한숨을 쉬었다.


#금융감독원에 일하는 E씨는 직장을 찾아온 G씨로부터 보험사 분쟁에 대한 민원을 들었다. E씨가 생각하기에도 G씨의 사연은 억울한 부분이 많았다. E씨는 G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몇달 간 사정을 알아봤다. 하지만 어느날 E씨는 부정청탁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영란법의 처벌 대상이 됐다.


-E씨가 김영란법의 처벌 대상이 된 것은 G씨의 민원을 그 자리에서 바로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에서 부정청탁이란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거나 지위ㆍ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E씨의 경우 금융감독원에 일하기 때문에 G씨의 민원은 자신의 공직 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김영란법에는 부정청탁의 정의에 대해 정확히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E씨의 경우가 부정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다.


공무원은 잠재적 범죄자?…"인간관계 종치는 法"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장준우 기자] 김영란법의 직접적인 제재 대상인 공직자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최초 발의된 원안과 정부안, 여러 의원발의 등을 두고 국회에서 정리를 하지 못한데다 법 적용의 당사자가 이러쿵 저러쿵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다만 공직사회가 더욱 투명하고 공정해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이런저런 걱정과 우려 때문에 부정적인 기류도 감지된다.


한 경제부처에 근무하는 A과장은 "(김영란법이) 공무원의 청렴성을 높이려는 법이 아니고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해 감시하려는 법 같다"며 "오히려 공무원의 신뢰를 더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업무와 무관하게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과의 술자리나 저녁자리도 갖기 어렵게 되면 가족 친척 말고는 인간관계를 갖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고용부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사소한 부정부패도 척결할 필요가 있지만,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공무원들이 위축될 것이라는 점은 우려된다"면서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안 그래도 공무원들이 위축됐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더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부처의 감사관은 "너무나 광범위한 적용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서민경제에 영향 미칠 수 있다"며 "특히 세종시와 같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확실히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이 부정부패의 고리를 확실히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일하기 더 편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정부부처 사무관은 "선배나 고위직들이 간혹 회식자리에 친구나 지인을 참여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직무와 무관하고 대가가 없다고 해도 부하직원이나 후배 또는 공공기관 같은 을(乙)에서는 연관성을 안 따지기 어렵다"며 "아예 김영란법을 만들어 1%의 가능성이나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게 서로가 더 편하다"고 털어놨다.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장준우 기자 sowha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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