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지난달 25일(한국시간) 잉글랜드와 코스타리카의 D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린 벨루오리존치 에스타디오 미네이랑. 두 팀이 0-0으로 맞선 후반 27분 잉글랜드 스티븐 제라드(34)가 라힘 스털링(20)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다.
이날 선발로 뛴 프랭크 램파드(36)는 자신의 주장완장을 제라드에 넘겼다. 제라드 역시 만감이 교차한다는 듯 램파드와 눈을 맞췄다.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 램파드와 제라드가 같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마지막 경기였다.
결국 두 선수는 월드컵 마지막 경기를 함께 했지만 팀의 승리를 이끌지는 못했다. 더구나 앞선 경기에서 2패를 당해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섰다. 잉글랜드의 중원을 책임졌던 램파드와 제라드는 그렇게 팬들에게 '조용한 안녕'을 전했다.
당초 잉글랜드는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할 대표팀 선발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로이 호지슨 감독(67)은 젊은 신예들로 대표팀을 꾸리길 원했고, 이에 팬들은 '경험'을 문제 삼았다. 그래서 호지슨 감독은 램파드와 제라드에 팀의 허리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번 월드컵 전까지 국가대표 경기(A매치)에서 105경기 스물아홉 골을 넣은 램파드와 111경기에서 스물한 골을 넣은 제라드는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에게 정신적 지주로서 부족함이 없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성적 1무 2패로 D조 최하위에 그쳤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후 56년 만에 조별리그 탈락. 램파드와 제라드의 화려한 마지막이 되기에는 성적이 너무 초라했다. 램파드는 코스타리카와의 경기 뒤 "우리는 충분한 준비를 했고 이겼어야 했다"면서 "대표팀에서 뛰는 내내 기뻤고 잉글랜드를 위해 뛸 수 있어 행복했다"고 했다. 제라드 역시 "대표팀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물러나는 것이 맞다. 월드컵 이후 입장을 정리하겠다"며 은퇴를 시사했다.
또 한 명의 이별을 고한 '별'은 이탈리아의 중원사령관 안드레아 피를로(35)다. 피를로 역시 마지막이 될 월드컵 무대에서 팀을 조별리그 탈락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적잖은 나이에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모두 10㎞ 이상(대 잉글랜드 10.54㎞ㆍ대 코스타리카 10.07㎞ㆍ대 우루과이 10.74㎞)을 뛰며 전방에 공을 공급했지만 받아든 성적표는 1승 2패 탈락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이은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
미드필더 진영에서 피를로를 거쳐가는 이탈리아의 선 굵은 축구는 전방압박을 강조하는 흐름에 이렇다 할 구실을 하지 못했다. 자국으로 돌아와서는 "새로운 감독이 나의 대표팀 잔류를 원할지 모르겠다"며 "어린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 밖에 A매치 101경기에서 예순세 골을 넣은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로그바(36)도 마지막 월드컵에서 팀의 조별리그 탈락(C조 1승 2패)을 지켜봐야 했다. 조별리그 세 경기 통틀어 시도한 유효슈팅은 단 한 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BBC 등 외신은 "자국의 내전을 멈추게 했던 위대한 축구선수가 은퇴를 앞두고 있다"며 "코트디부아르에서 축구를 통해 내전을 멈추게 선수는 드로그바가 최초였다"고 전했다. 2006년 코트디부아르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던 드로그바는 당시 "월드컵 기간 동안이라도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했고, 이로 인해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된 바 있다.
마지막 도전에서 새로운 역사에 도전하는 '별'도 있다.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36)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다섯 골을 시작으로 이번 대회까지 월드컵에서만 총 열다섯 골을 넣었다. 브라질의 호나우두(38ㆍ은퇴)와 함께 역대 월드컵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에게 월드컵에서의 한 골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 기회라는 점에서 더 값지고 절실하다.
기회는 있다. 오는 5일 오전 1시 리우데자네이루 에스타디오 마라카낭에서 프랑스와 8강전을 한다. 팀 성적에 따라서는 두 차례 더 출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월드컵과 이별하는 클로제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마지막 도전이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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