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시리즈 Story #5. '출판기념회'라 쓰고 후원금이라 읽는다
1년반새 71명이나 책 낸 왕성한 저술가 집단, 매주 한번씩은 '콜'이 오는셈
의원 출판기념회는 '出金'기념회
수입은 철저히 함구…15년 경력 보좌관도 "모른다" 잘라 말해
지역민 몇백명씩 봉투 내고 인증샷…15분씩 줄서서 의원과 악수도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수입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게 보좌진들 사이에서 불문율이에요. 출판기념회가 끝나면 후원금을 의원님이 바로 가져가서 가족끼리 세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 경우에는 의원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출판기념회 수입을 묻자 15년 경력의 한 보좌관은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수입에 대해서도 서로 함구하는 것이 철칙이라고 설명한다. 의원실에서도 보통 국회의원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보좌관 한두 명 정도만 모금함에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의원이 직접 돈을 세는 경우에는 의원 말고는 알 길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출판기념회 수입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하다. 때론 크게 부풀려지기도 한다. 한 재선 의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보좌관은 "지난해 여당 유력 인사인 모 의원이 출판기념회 한 번으로 5억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이를 모두 믿을 순 없지만 야당보다는 여당 의원이, 위원장·간사 등의 중요 보직을 맡고 있는 의원의 수입이 평의원보다 많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말했다.
◆19대 국회의원 넷 중 한 명 책 출판=지난해 1월부터 올 상반기까지 국회 안에서 열린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는 76건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 개최 데드라인인 지난 3월5일까지의 통계다. 한 달 평균 5.6건, 주 1회 이상 열린 셈이다. 하지만 지역구를 포함해 국회 밖에서 개최하는 경우도 많아 이를 포함하면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빈도는 더 높아진다.
실제 취재진이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되는 현역 국회의원의 책을 전수 조사한 결과, 19대 국회가 시작된 후 1년6개월 동안 저자로 이름을 올린 현역 국회의원은 총 71명이었다. 이들이 출판한 책은 99종에 달했다. 전체 국회의원의 23.8%가 이 기간 중 책을 낸 것이다. 여기에는 실제 판매가 되지 않는 책도 다수 포함돼 있어 출판기념회 용도로만 제작된 경우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출판기념회는 저작물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그것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다. 하지만 출판기념회 횟수나 규모, 회계 처리 등에 대한 규정이 전무한 상황. 이 탓에 정치인들이 이를 정치자금 마련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공직선거법은 출판기념회 개최가 가능한 기간만 규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제103조)에 따르면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후보자(입후보 예정자 포함)는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정치자금법상 경조사와 마찬가지로 출판기념회의 수입은 따로 보고할 의무는 없다"며 "다만 선거법상 출판기념회 명목으로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에게 초청장을 보내는 등 선거운동에 이르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초청장만 발송하지 않으면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봉투 대신 냈으니 증거 보여줘야지"= 지난 2월 초 국회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 앞 로비는 성별과 나이, 복장도 각기 다른 200여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씩 손에 쥔 '노란색 봉투'. 서너 개의 봉투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봉투 안에는 이날 출판기념회를 연 K의원의 세 번째 자서전이 한 권씩 들어 있었다.
축하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은 대회의실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줄을 섰다. 테이블 위에는 방명록 6개와 후원금 모금함 3개, 수십 권의 책이 쌓여있다. 방명록에 이름과 소속을 또박또박 적고 흰 봉투를 상자에 넣으면 행사 도우미가 책 한 권을 건넸다. 일부는 방명록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기도 했다. 한 60대 남성은 휴대전화 주소록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봉투에 그 이름을 적었다. 봉투가 접히는 부분에 '500, -'라고 적은 뒤 지갑에서 5만원짜리 지폐 열장을 꺼내 봉투에 넣었다. 책을 받은 사람들은 행사의 주인공인 K의원을 찾아가 책에 사인을 받거나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K의원과 나란히 서서 '인증샷'을 찍었다.
K의원의 지역구에 사는 김모(60)씨는 지인 10명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출판기념회장을 찾았다고 했다. 이날 같이 오지 못한 마을 사람들은 대신 봉투 전달을 부탁했다. 봉투에 얼마가 들어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김씨와 일행들은 이들의 봉투까지 대신 전달하고 44권의 책이 든 상자 1개를 통째로 차에 실었다. "봉투를 받아왔으니 '증거'를 보여줘야지."
이날 행사장을 찾은 사람은 K의원의 지역구 주민 200여명, 각종 동창·동문회원 등이었다. 출판기념회 사회를 맡은 같은 당 의원을 포함해 여야 의원 30여명도 행사에 참석했다. 432개의 의자가 가득 찼고 150여명의 사람들은 행사장 뒤편에 섰다. 안으로 입장하지 못하고 로비에 있는 사람도 많았다.
행사를 보지 않고 먼저 간 사람들을 포함해 이날 1000여명이 출판기념회를 찾았지만 봉투 안에서 책을 꺼내보는 사람들은 수십명에 불과했다. 동갑내기 친구 10명과 함께 온 한 남성(21)은 누구를 보러 왔냐고 묻자 "이름은 몰라요"라며 "국회의원 보러 동네 사람들과 10만원씩 내고 아침에 왔어요"라고 답했다.
며칠 뒤 같은 자리에서 열린 H의원의 출판기념회장도 400여명의 지역주민들과 여야 의원 70여명이 참석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날의 주인공 H의원과 악수하고 인사를 하기 위해 120여명이 선 줄이 약 40m에 달했다. 줄을 선 사람들은 15분 정도 기다려야 H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자정 노력과 함께 유권자 인식도 변해야= 보통 출판기념회는 선거나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 정점을 이룬다. 사전 선거운동 금지 규정을 피해 자신을 알릴 수 있고, 피감 기관이나 기업에 우월적일 수밖에 없는 지위를 암묵적으로 이용해 모금 한도와 사용 내역 등을 공개하지 않고도 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던 L의원은 같은 책으로 불과 4개월 만에 자신의 지역구에서 또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올 들어 여야는 출판기념회 투명화 방안을 약속했다.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는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정치자금법을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신년 기자회견에 이어 ▲국회의원 임기 중 출판기념회 연2회 제한 ▲국정감사·정기국회·예산국회·선거 임박 시점의 출판기념회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준칙을 내놓았다.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정치혁신안을 발표하면서 "출판기념회의 비용과 수익을 선관위에 신고하고 관리감독을 받게 해서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자정의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이종걸 의원은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는 도서 판매를 정가로 하고 수입과 지출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국회의원 윤리실천법안'을 발의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야당 중진인 P의원은 예정돼 있던 출판기념회를 취소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의 행사 취소도 잇따랐다.
법 개정 이전에라도 이를 실천하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지방 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던 한 예비후보는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투명 모금함'을 선보기도 했다. 그는 불투명한 모금함 대신 투명 아크릴 모금함에 책값만 받고 출판기념회 수입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출판기념회의 회계 투명화를 위해서는 국회의원들의 자정 노력과 함께 유권자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출판기념회는 정치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유권자와의 합작품"이라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출판기념회의 수익이 쓰이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지역구 관리다. 의원이 경조사에 가려면 빈손으로 갈 수 있나. 하다못해 보좌관이라도 돈을 가져가야 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정치인들만 비난하기 어렵다. 유권자들도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직 이외의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 다만…."
국회의원은 국회법 제29조 1항에 따라 겸직이 금지된다. 다만 공익 목적의 명예직과 다른 법률에서 허용한 임명·위촉직, 정당법에 따른 정당직은 허용된다. 이 예외 조항에 근거해 일부 국회의원들은 '투잡'을 하고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회사무처가 공개한 '국회의원 겸직 현황'에 따르면 개정된 국회법에 따라 겸직 상황을 신고하기 직전인 지난 2월 85명이 국회의원 이외의 다른 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겸직 수는 총 173개로 겸직의원들은 2개 이상의 겸직을 신고했다.
173개의 겸직 중 14.4%인 25개는 일정한 보수를 받는 유급직이었다. 자신이 대표 혹은 소속 변호사로 법무법인으로부터 보수를 받는 경우가 11개(44%)로 가장 많았다. 기업의 대표 혹은 고문 등이 8개(32%), 교수가 4개(16%), 노조위원장 1개(4%) 등이었다.
국회의원 겸직 수는 지난해보다는 줄어들었다. 지난해 1월에는 96명의 의원이 194개 자리를 겸직하고 있었다. 유급직도 32개였다.
이처럼 겸직 수가 줄어든 것은 포괄적인 겸직 허용이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을 국회의원들이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지난해 7월 국회의원 겸직 금지 조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국회법 개정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겸직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개정 취지가 살아 있었다.
그러나 법 시행을 앞두고 겸직 심사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빛이 바랬다. '공익 목적의 명예직'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겸직을 폭넓게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최근 국회 감사관실은 각 당에 '공익 목적의 명예직'에 대한 내부 기준을 전달했는데 '비영리·비상근·무보수'면 겸직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심사기준 논의 초기에는 법인이나 단체의 대표·회장·이사·원장·총재, 향우회·종친회·산악회 등에서의 직을 겸직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상세한 예시까지 곁들였지만 법 시행 직전 겸직 제한 조건이 크게 후퇴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개정 국회법에 따라 겸직신고서를 제출한 국회의원은 오히려 늘어 총 95명, 306건에 달했다. 의원은 10명, 겸직 건수는 133건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개정된 법은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겸직 대상 의원들을 심사해 국회의장이 겸직 가능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겸직 금지 결정이 내려지면 직책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일단 올리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지난 13일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이 중 170여건이 '겸직 불가'하다는 자문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국회의장이 겸직 불가를 결정하면 해당 의원들은 겸직은 3개월, 영리업무는 6개월 안에 이를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전반기 국회의장은 이를 결정하지 않은 채 임기를 마쳤다.
여론에 떠밀려 겸직 금지에 대해 법은 엄격하게 만들어 놓고서 정작 법 시행과 해석은 느슨하게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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