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후보자에 대한 비판이 많이 쏟아지고 있지만 나는 그가 우리 사회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에 감사를 보낼 점이 꽤 있다고 본다. 그가 우리 사회에서 그늘 속에 있던 문제들을 햇볕 속으로 드러내고 많은 이들이 잊고 있던 것들을 환기시켜 줬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 수백권의 역사 교재가 하지 못하는 일을 단 며칠 만에 해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우쳐 준 역사 학습의 교사였다. 특히 일제 식민시대가 결코 해방과 함께 끝난 게 아니라 지금껏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것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윤치호의 후예들이 아직껏 건재함을 더 이상 생생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보여 줬다.
그는 또 우리 사회 신앙의 실상에 대해 장로로서 '간증'해줬다. 현실과 역사에 대한 이해, 속(俗)의 건전한 인식 없이는 성(聖)의 건전한 신앙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육성으로 증언해줬다.
그는 또 자신의 전모를 숨김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 사회 '지식인' 또는 '지도층'으로 불리는 이들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게 해줬다. 예컨대 그가 쓴 칼럼에서 많은 이들은 그 극보수적 시각을 지적했으나 내 눈에 더 뚜렷이 들어왔던 인상은 그의 필설의 간단명료함이었다. 그의 언어에서 보이는, 단순미라고까지 할 만한 간단명료함은 최고 명문대를 거친 학벌이나 유력 언론사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했던 그 빛나는 경력이 결코 지성의 충분조건이 아님을 새삼 일깨워 줬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것에서 우리 사회의 관대함을 볼 수 있었다. '시민'의 품성을 갖췄는지조차 의문시되는 이에게 막중한 공인의 역할을 맡김으로써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그 배려에 이 사회가 결코 각박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 그의 공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를 총리로 내세움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임명권자가 계획하고 있는 '국가개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론의 모진 뭇매를 맞고 있는 이 가련한 후보자가 결국 총리에 임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는 인사 청문회 통과 여부에 상관 없이 사실상 '총리'의 몫을 이미 해낸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숨은 뜻이 많았던 인사였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시련으로 이 땅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는 그에게 감사를 보내야지 않겠는가.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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