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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식민사관 극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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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서점이 없었다. 이웃 나라와 비교해 특이한 모습이었다.


서점이 없었다는 것은 출판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책을 구하는 일이나 펴내는 일 모두 돈이 많이 들었고, 돈을 내거나 댈 용의가 있어도 여의치 않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책을 빌려서 베끼곤 했다는 사실이 당시 실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널리 읽힌 고전도 새로 찍혀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책값이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에 따르면 영조 때 인쇄돼 보급된 '대학'과 '중용'은 각각 178면, 294면으로 그리 두껍지 않았다. 이 책의 값은 그러나 각각 면포 서너 필에 해당했다. 1955년 쌀 한 가마(80㎏) 도매가가 1만3000환이고 광목(면포) 한 필이 6200환이었다(경향신문 1955.10.4. 추석 후 제 물가 동향). 면포 서너 필은 최고 쌀 두 가마의 값에 해당했다. 요즘 쌀 한 가마 시세를 17만원이라고 하고 이 시세를 조선시대에 적용하면 책 한 권 가격이 34만원이었다는 얘기다.


'조선출판주식회사'에 따르면 조선은 나라가 책을 출판해 보급하는 업무를 주관했다. 충성과 효도 같은 유교 윤리를 가르치는 책은 대대적으로 간행해 배포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종 때 '삼강행실도'를 한번에 2940질이나 펴냈다.

조선이 출판을 독점해 체제를 유지하고 통치이념을 전파하는 동안 새로운 지식의 숨통이 막혔다.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 등 대표적인 실학자의 저서도 출간되지 않았다.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1930년대에야 인쇄됐다.


출판되지 않은 책은 쓰이지 않은 책이나 다름없다. 실학은 같은 뜻을 품은 학자들 사이에 알음알음으로 필사본으로 전해졌을 뿐, 확산되고 축적되지 않았다. 실학은 후세 역사가들이 의미를 부여한 것만큼 공론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활용했지만 정작 출판문화는 갖지 못했다. 그렇다면 금속활자는 과연 자랑할 일인가? 실학의 의미를 찾으면서 실학이 뿌리내리지 못한 배경을 함께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쓰이지 않은 금속활자와 논의되지 못한 실학을 강조하는 것은 일제 식민사관에 대한 반발과 같은 맥락에서 나왔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식민사관을 극복한다는 의욕을 앞세우다가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식민사관을 이기는 법은 역사로부터 배워 오늘부터 진행되는 새로운 역사를 잘 쓰는 것이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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