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경제적 빈곤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인 시민의 움직임과 연대에 의해 시작됐다. 1800년대 중반 배고픈 시민들을 위한 빵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진 독일의 '바이부쉬 빵연합'이 그랬고, 대중의 빈곤에 대처하기 위해 자조의 원칙을 바탕으로 설립된 '라이파이젠방크'가 그러했다. 유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협동조합 운동이 시작된 미국 역시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은 저소득층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념하에 소수 인종과 이민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설립됐다. 이처럼 협동조합은 소외된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책임을 부여받아 태동됐다.
대한민국의 금융협동조합 역시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지위와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이념으로 출발했다. 협동조합 형태의 금융이 고도로 발달한 유럽에 비해 전체 금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편이나 나름대로의 고객기반과 업무영역을 가지고 발전해왔다.
이제 대한민국의 금융협동조합에도 그 규모와 위상에 맞는 적극적인 책임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 다루었던 사회공헌활동과 함께 이른바 '관계형 금융' 활성화를 통한 금융 사각지대 해소가 주요한 금융협동조합의 역할로 손꼽히고 있다.
관계형 금융이란 채무자의 신용등급 및 재무상태와 같은 재무적 정보뿐만 아니라 사업실적(또는 사업의 전망), 사회적 평판 등 비재무적 정보를 적극 활용해 담보여력이 부족한 영세소상공인 등에게 여신을 공급해주는 금융의 형태를 말한다.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은 담보(또는 보증)를 중심으로 한 대출이 일반적이다. 담보대출은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채권 확보 등 사후관리가 용이하고 채무자 입장에서도 부족한 신용을 담보로 보완해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담보대출 위주로 금융시장의 거래관행이 굳어질 경우 영세소상공인이 사업실적과 사회적 평판을 바탕으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줄어들게 된다.
물론 채무자의 비재무적 정보를 활용해 대출을 지원한다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제대로 된 관계형 금융의 평가방식이 시스템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확대할 경우 높은 연체율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는 정책자금대출로 관계형 금융의 역할을 대체하는 단계이다. 정책자금대출이란 정부 및 지자체의 보증과 금융기관의 자금유통이 결합된 형태로 영세소상공인에게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혜택이 돌아간다는 큰 장점이 있으나 자생적이고 지속적인 관계형 금융 정착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관계형 금융이 뿌리내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자발적인 금융협동조합의 참여가 우선이다. 기존의 담보 및 보증대출에 안주하는 업무관행을 타파하고, 지역 내 건실한 영세소상공인을 발굴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비재무적 정보를 활용하여 건실한 채무자를 선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금융협동조합의 경우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채무자에 대해 양질의 비재무적 정보를 취합할 수 있다. 또한 임직원 교육을 통한 관계형 금융 전문인력을 양성한다면 오히려 일반 상업은행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관계형 금융을 핵심경영활동의 하나로 인식하여 금융협동조합의 특화된 상품으로 브랜드화 시키는 전략도 필요하다.
둘째, 정부와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다. 특히 관계형 금융의 성격을 감안하여 단순히 연체정보뿐만 아니라 사업의 미래 현금흐름과 채무자의 사회적 평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탄력적인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을 시스템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적극적인 세제 및 제도지원으로 관계형 금융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이 금리 경쟁력을 유지하여 낮은 대출 금리로 대출을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신종백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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