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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차마 눈뜨고 못 볼, 세월호 'B-19 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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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선, 아이들이 의자를 들어 창문을 깨려하고 있었다…밖에선, 구조정이 나온 사람들만 건지고 돌아갔다

[세월호 침몰]차마 눈뜨고 못 볼, 세월호 'B-19 선실'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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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전남)=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선체 안에서 수습된 228구의 시신 중 176구는 4층에서 발견됐다. 3층에서 38구, 5층에서 14구가 발견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4층은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객실과 다인실 등이 밀집했던 곳이다. 사고 전후의 동영상을 보면 이 중 2학년 8반 학생들이 머물던 B-19 객실에서는 배가 완전히 전복되기 직전 필사의 탈출 요청이 있었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아니 '반드시 살려야 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동영상 등에서는 해경이 이를 외면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4월16일 10시25분, 배가 가라앉던 그 순간 B-19 객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여객선 우현에서 '마지막으로' 생존자 30여명이 구조되는 상황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이 헬기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면 세월호가 완전히 전복되기 직전 4층 객실의 일부 창문이 수면 밖으로 드러나 있다. 이를 좀 더 확대하면 선실에 갇힌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저마다 창문에 매달려 주변에 모인 구조정과 어선들을 보고 있는 가운데 이 중 한 명이 의자를 들어 필사적으로 유리창을 깨려는 장면이 포착된다. 그러나 해경 구조정은 갑판 위에 이미 나와 있던 사람들만을 보트에 태운 뒤 방향을 틀어 사라지고, 이내 배는 기울기 시작한다.

자신들을 구하러 왔다고 믿었던 해경의 코앞에서 창문을 두들기며 살려달라 외쳤던, 살릴 수 있었고 살려야만 했던 학생들은 모두 시신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찾지 못한 30여명의 실종자에 대해서도 해경은 8일 브리핑을 통해 "실종자 잔존 가능성이 큰 곳은 4층 다인실"이라며 향후 집중 재수색에 가장 중점이 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단원고 2학년 고(故)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8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동영상에서 배 안의 아이들이 유리창을 깨보려고 의자로 계속 창문을 부수려 (시도)하고 손 흔들던 위치가 (내 아들) 수현이가 있던 2학년 8반 객실이었다고 일본 기자들이 전해줬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들이 남긴 핸드폰에서 '베드룸 B-19'라는 객실 번호가 또렷하게 찍힌 사진을 발견했고 세월호 내부 도면과 단원고 학생들의 방 배치 등을 분석한 결과, 해당 객실이 영상에 나타난 부분과 일치하는 정황들이 드러났다. 4층 선수 쪽에 가까운 B-19 객실은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한 5층 조타실 바로 아래쪽이다.


박씨는 "한 번이라도 그 유리창을 깨줬더라면…"이라고 울분을 토하며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고 털어놨다.


B-19 학생들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유리창을 깰 수 있었던 망치는 선실 내에 없었다. 그 망치를 갖고 있었던 해경 구조대는 학생들이 눈앞에서 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놔두고 '유유히' 돌아갔다.


한편 수현군의 아버지 박씨는 "관계 당국이 (해경의 초기대응이 왜 적극적이지 않았는지)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의 조문만 받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아이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지난 5일 밤 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을 떼어왔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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