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新ㆍ舊 이색풍경 3곳-방선문계곡, 제주 항공우주박물관, 동굴카페 다희연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제주도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빼어난 자연풍광이 으뜸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는 물론이고 '살고 싶은 곳'으로도 손꼽힙니다. 이런 제주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소는 있습니다. 아마도 한라산, 올레길, 성산 일출봉, 혹은 우도나 오름 …. 등이 우선 순위로 꼽힐것입니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300~400년 전 제주의 최고 명소는 어디였을까요. 다름아닌 '방선문'계곡 입니다. 옛 선비들이 한라산에 살고 있다고 믿은 신선을 만나러 갔던 계곡입니다. '찾을 방(訪)'에 '신선 선(仙)', 그리고 '문 문(門)'자를 쓰니 '신선을 찾아가는 문'이란 뜻이죠. 제주를 찾는다면 꼭 잊지말고 조선시대 최고의 명소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또 제주에는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이색 명소도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바로 항공우주박물관입니다. 조선시대 명소와는 정반대의 항공과 우주를 테마로 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박물관입니다. 동굴 안 카페는 또 어떨까요. '동굴' 하면 먼저 음침하고 축축한 느낌이 들어 꺼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동굴카페 다희연에서 맛보는 차 한잔은 색다른 향기로 다가옵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소 방선문계곡에 들다
제주도 사투리로 방선문은 '들렁귀'라고 부른다. '뚫어진 엉덕(바위)'이란 얘기다.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인 한천의 상류에 자리 잡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이자 영주 10경에 속하는 방선문은 그 풍경만으로 능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봄이면 철쭉꽃이 계곡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영구춘화(瀛丘春花)'의 주인공이다. 그 옛날 등반길이 없을 때 이 계곡을 따라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고 내렸다.
방선문에 들면 누가 새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바위문 안에는 '신선을 만나는 문'이란 뜻의 '방선문(訪仙門)'이란 이름부터 '신선을 부른다'는 뜻의 '환선대(喚仙臺)'란 이름까지 다양한 글귀들이 새겨져 있다. 일대의 선비들은 물론이고 벼슬아치부터 제주 유배객까지 앞다퉈 방선문계곡에 이름과 시를 새겨 두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방선문계곡이 제주 최고의 명소로 꼽혔던 모양이다.
방선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 계곡으로 내려설 수 있도록 잘 다듬어진 나무데크가 시작된다.
'신선을 만나는 문'이라는 이름처럼 절경을 자랑하는 방선문계곡은 넓고 깊고 길다. 촛농처럼 굴곡진 조면암이 계곡 가득 물결친다. 생김새가 제각각인 바위는 저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중 둥근 바위에 큰 구멍이 뚫린 거대한 동굴이 눈길을 끈다. 바로 방선문이다. 동굴안 바위곳곳에는 '흰 사슴 타고 놀던 신선이 떠나가고 없다'는 시구절이 있는가 하면, 바위 구멍이 '안개 그림 드리워 오랜 세월 잠가 놓았다'는 시구도 있다. 또 계곡에는 담박한 필치로 쓴 면암 최익현의 이름 석자도 뚜렷하다. 이렇게 방선문 일대에 새겨진 글귀만 200여 개에 이른다.
이처럼 유배객중 최익현을 빼놓을 수 없다. 최익현은 조선 말기 역사적 격변에 앞장서 부딪쳤던 지식인이자 조선 선비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는 대원군의 실정을 낱낱이 열거하고 왕의 친정과 대원군 퇴출을 주장했다가 체포돼 제주로 유배를 가게 됐다. 제주목관아 부근에 있던 아전의 집에서 유배생활에 들어간다. 최익현이 유배생활중 걸었던 유배길에는 유적과 한일병합 후 유림들이 광복투쟁을 결의하며 석벽에 글을 새겨 놓았다는 조설대(朝雪臺)도 있다. 조설대는 '조선의 수치를 설욕하겠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배길은 민오름을 지나 종착지인 방선문계곡에 당도한다.
계곡 양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이 절벽을 뚫고 나온 나무와 풀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식생도 다양하다. 소나무와 사철나무, 철쭉, 마취목, 사스레피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생명을 이어간다. 천상의 선녀들이 먹었다는 천선과나무도 있다. 9~10월에 검은 자주색 열매가 달린다.
조선최고의 명소에 전설 한토막쯤은 당연할터. 그 옛날 방선문계곡에는 복날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 이때마다 한라산 산신은 방선문 밖 인간세계로 나와 선녀들이 하늘로 돌아갈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신선은 미처 방선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말았다. 이에 노한 옥황상제가 산신을 하얀 사슴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산신은 매년 복날이면 백록담에 올라 슬피 울었다고 한다. '하얀 사슴의 연못'이라는 백록담 이름이 이 전설에서 나왔다.
방선문계곡은 주차장에서 바로 내려 주변만 둘러보는것도 좋지만 한천 초입부터 500여m 바위길을 타고 넘어가는것을 권한다. 곳곳에 새겨진 옛글귀와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보면서 걷는 맛이 일품이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 하늘을 향한 상상이 현실이 된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소였던 방선문과 달리 초신식 현대적 명소가 지난달 제주에 문을 열었다.
바로 항공과 우주를 테마로 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이 그것. 하늘과 우주에 대한 어릴적 상상이 현실로 실현되는 공간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운영하는 항공우주박물관은 세계 최대 박물관인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의 콘텐츠가 그대로 도입됐다.
커다란 비행선 모양의 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건물 안팎으로 전시된 항공기다. 한국전쟁에 투입됐던 전투기를 비롯해 대한민국 영공을 지켜 온 공군 항공기 35대(실내 23대, 외부 12대)를 직접 볼 수 있다.
실내에 전시된 항공기 대부분은 다양한 높이와 각도로 공중에 매달려 창공을 날던 모습 그대로 전시됐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인류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호도 실물 크기로 제작돼 하늘을 향한 인류 도전의 역사를 직접 보여준다..
2층 천문우주관에 들어서면 우리나라는 물론 동서양 천문학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별자리 체험을 할 수 있는 대형 파노라마 스크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화성 탐사로봇인 '큐리오시티' 모형이 실물 크기로 전시되며 우주정거장 모듈도 재현돼 전시장 한곳을 차지한다. 수차례 시도 끝에 지난해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도 실제 크기 모형으로 전시돼 안팎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2층 전시 공간은 '우주를 향한 길'을 따라 이어진다. 길을 걸으며 대형 스크린에 떠오르는 영상 등을 통해 우리가 사는 태양계뿐 아니라 은하계와 초대형 블랙홀 등 우주 전체의 구조와 생성 과정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천문우주관을 지나면 오감으로 우주 여행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테마관'이다. '폴라리스'는 한 번에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5차원(5D) 서클비전으로 이곳에서는 높이 5m, 전체 길이 50m의 360도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는 입체 영상에 실감 나는 특수효과가 더해져 오감으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다희연, 동굴 안 카페에 퍼지는 은은한 차향
'동굴' 하면 먼저 음침하고 축축한 느낌이 들어 꺼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굴 안에서도 분위기 있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제주 다희연의 동굴 카페는 그런 생각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다.
다희연은 조천읍 선흘리에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곳의 차밭 이름은 '동굴의 다원'이고, 이 다원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녹차 브랜드가 다희연이다. 하지만 차밭도, 이곳에서 생산하는 차도 다 다희연이라고 부른다. 이곳 차밭은 20만3880㎡(6만평)지만 그 숫자만큼 커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다원이 갖고 있는 동굴카페 '다담'의 아늑함 때문이다.
다원 입구 쪽에는 녹차밭을 조성하면서 발견된 용암동굴이 있다. 인근 선흘리의 거문오름 일대가 용암동굴이 발달한 곳이어서 이곳에서도 동굴이 발견됐다. 그 동굴 끝 천장이 뚫린 광장에다 흰색 천으로 지붕을 얹어 카페를 조성해 놓았다. 자연 용암동굴이 근사한 카페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희연의 동굴은 입구 차문화관 뒤편의 지하에 있다. 용암이 흘러내려 만든 암반에 달아 놓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 어둑한 동굴 입구다. 훈기와 함께 촉촉한 습기가 느껴진다. 안경이며 카메라 렌즈에 순식간에 김이 서린다.
굴은 길지도, 그렇다고 그리 짧지도 않다. 빛이 드는 곳을 따라가면 좁은 굴이 일순 환해지면서 너른 광장이 나타난다. 그곳이 바로 동굴에 만들어진 카페다. 카페는 제법 규모가 크다. 카페의 좌석만 100여석에 이를 정도다. 자연 동굴 안에서 차를 마시는 기분은 색다르다. 차 맛도 차 맛이려니와 동굴이 주는 훈기와 아늑함, 그리고 잔잔한 음악까지 곁들여지니 더할 나위 없다.
다희연에는 이색적으로 하늘을 날을 수(?) 있는 레포츠 시설도 갖췄다. 무동력으로 운행돼 친환경 놀이시설로 꼽히는 '짚라인'이 그것이다. 출발지와 도착지 구간을 철제 와이어로 연결해 탑승자와 연결된 트롤리(도르래)를 와이어에 걸고 이동하며 속도와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레포츠다.
제주=글 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제주공항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걸린다. 신제주로터리와 연동사거리를 지나서 아연로를 따라가다 오남로 쪽으로 우회전. 물길의 흔적을 따라 오르면 방선문이다.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은 공항에서 중문, 한림방면으로 도령로를 따라 가다 동광육거리에서 신화역사로를 따라 4km가면된다. 주변에 차밭 오설록이 있다. 다희연은 제주시에서 중산간도로인 1136번 도로를 따라 대흘초등학교를 지나 와산리 교차로에서 우회전한 뒤 곧바로 선인동 방면으로 좌회전한 다음 2㎞쯤 가다 선인동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하면 된다.
△먹거리=관광객을 겨냥한 맛집에 질린다면 현지인들이 찾아먹는 곳은 어떨까. 한라산 중산간 가시리마을의 명문사거리식당(064-787-1121)이 좋다. 제주 돼지고기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생고기, 몸국(사진. 삶은 육수에 모자반을 넣어 끓인 국), 순대 등을 맛볼 수 있다. 제주시내 동문시장안의 골목식당(064-757-4890)은 40여년을 이어져오는 꿩메밀국수집으로 유명하다. 제주의 토속별미인 꿩과 메밀로 국수를 말아내는데 담백하고 걸쭉하다. 서문시장의 '대우식당'(064-722-7085)은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제주 한우를 맛볼 수 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가 1인당 5000원씩의 차림요금을 내면 된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는 토종닭으로 유명한 지역. '교래토종닭'(064-782-9799)이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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