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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퇴계가 쌍룡곡에서 운우지정을…(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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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70)


[千日野話]퇴계가 쌍룡곡에서 운우지정을…(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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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지번이 장난끼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겸수공석의 퇴계가, 구름 흐르고 비가 올 때마다 양대의 잠자리를 선녀와 함께 하시는 셈이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겠소이까?”

좌중이 모두 포복절도했다. 두향이 말했다.


“이 또한 나으리의 곡진한 사랑과 너그러운 도량을 모두 품는 것이니, 구옹(이지번)어른의 말씀도 참으로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바위처럼 사랑하고 물처럼 사랑하는 일이야 말로, 나으리가 제게 일깨워주신 큰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허허. 쌍룡곡은 이제 양대곡이 되지 않을까 싶네그려. 세상의 사랑이 박하고 모질어 고통받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선연(善緣, 좋은 인연)을 이루고 가는 일이 생겨났으면 좋겠소이다. 이 또한 단양고을의 자랑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일행은 다시 웃음을 지었다. 옥염대에 앉아 술잔을 나누며 오후를 즐겼다. 퇴계가 일어나서 말했다.


“이제 선암계곡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인 와룡곡(지금의 상선암)으로 가봅시다. 와룡계곡은 공서선생이 맡아주구려.”


와룡계곡으로 가는 길은 경천벽, 와룡대, 일사대, 명경담, 학주봉, 광영담으로 이어지는 절경의 오딧세이다. 도락산 계곡 위에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선암사(仙巖寺)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말에 대웅전이 헐리면서 폐사되었고 1956년에 중창하여 상선암(上禪庵)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의 계곡 이름인 상선암(上仙巖)과는 한자가 다르다.) 이 선암사의 한 암자에, 젊은 시절 수암 권상하(1641-1721)가 머무르며 공부를 했다. 권상하는 이이와 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정통이다. 선암사 주변의 적요(寂寥)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그를 크게 매료시켰을 것이다. 퇴계 시절과는 100년 남짓 뒤의 일인지라, 산수(山水)에도 변화가 없을 리 없었겠지만, 그래도 당시 풍경을 짐작하는데는 권상하의 입으로 읊은 시(詩)만큼 훌륭한 리포트도 없으리라. 그가 읊은 대표적인 선암사 시편을 즐기고 가자.


白玉鋪陳錦繡屛 虹光雪色鏡中明(백옥포진금수병 홍광설색경중명)
歸來如罷瑤臺夢 尙有仙風滿袖淸(귀래여파요대몽 상유선풍만수청)


백옥같은 바위가 비단병풍을 둘렀도다
무지개빛 눈빛 거울속에서 밝도다
돌아오니 하늘 누대에서 꿈을 깬 것 같다
아직도 신선 향기가 소매에 가득 차 맑다


권상하의 ‘선암에서 돌아오는 길’


이 시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권상하도 아까 명월이 얘기한 양대(陽臺)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 또한 가을날 옥염대와 명경대 바위에 오래 앉아있다가 왔다. 백옥은 바로 옥염대이며 단풍의 무지개빛과 바위의 눈빛을 비추는 밝은 거울은 명경대이다. 그곳에서 노닐다가 돌아오니 요대(瑤臺)에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요대는 중국 은나라의 주왕이 만들었다는 아름다운 누대를 말하기도 하고, 신선이 사는 곳을 은유하기도 하지만, 누대의 꿈을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산지몽’이 어른거린다. 그렇다면 저 선풍(仙風)은 선녀와의 동침이 된다. 젊디젊은 권상하가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왜 안했겠는가.


권상하가 머물렀던 선암사의 암자는 수일암(守一菴)이었다. 한 가지를 지키는 공부처(工夫處)라는 뜻이다. 그가 수일암에서 한 벗과 같이 자며 밤중에 읊은 시가 남아있다.


막막히 높은 산에 절을 지었는데
향을 사르고 침묵하며 앉으니 세상인연이 잿더미다
훌륭한 벗이 선천학을 열강하는데
오묘한 뜻을 찾아 가니 복희씨까지 나오는구나
물 한 줄기 감아돌아 밝기가 거울같은데
천개 봉우리 둘러싸니 푸른 벽이 되었구나
늘그막의 살 계획은 이것으로 족하니
어찌 속세를 향해 헛되이 고개 돌리랴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겸손한 바위와 물, 퇴계 계곡




이상국 편집 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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