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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겸손한 바위와 물, 퇴계 계곡(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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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69)


[千日野話]겸손한 바위와 물, 퇴계 계곡(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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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가을 청풍부사 안숙이 이곳에 와서 각자(刻字)를 보았다. 저 글귀에서 착안하여 4군을 유람하며 시문을 읊고, 그 시문을 바탕으로 화가 이방운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의뢰한다. 그래서 만든 서화첩 명칭이 '사군강산 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ㆍ參僊은 三仙과 같은 의미)'이다. 서화첩은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국민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쌍룡계곡(중선암)의 옥염대 바위에 새겨져 있던 1717년의 글씨 '사군강산 삼선수석'이 100년 뒤에 그림과 글로 다시 태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선암계곡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 한 사람의 개인적인 소견이 아니라, 당대와 후대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단양유람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오르는 길에 이산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삼선수석'이란 말이 새겨진 옥염대(玉艶臺)의 의미는 옥같이 고운 누대(樓臺)라는 뜻이고, 명경대(明鏡臺)는 밝은 거울 같은 누대라는 뜻이니, 두 바위 모두 이토록 고운 여인을 형용한 까닭은 무엇일지요?"


명월이 대답했다.


"바위의 흰빛이 여인의 개결한 용모를 닮았고, 그 바위 아래 푸른 물빛이 여인을 비춘 거울을 닮았으니, 이 이름을 지은 이는 아마도 신선 중에서도 선녀를 염두에 둔 게 아닐까 합니다. 중국에서는 '무산의 꿈(巫山之夢)'이란 말이 있지요. 전국시대 초나라 양왕(襄王)이 운몽(雲夢)이라는 곳에서 노는데, 문득 하늘을 보니 기묘한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합니다. 함께 갔던 신하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얘기를 했다 합니다. '선녀입니다. 선녀가 아침 구름으로 나타나 사랑을 청하는 것입니다.' 양왕이 놀라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그런가?' 그러자 신하는 말했지요. '오래전에 어느 왕이 잔치를 즐기다가 문득 낮잠에 들었는데 꿈에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말을 건넸다 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산(巫山)의 선녀라고 밝히며, 왕을 사모하여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다고 말합니다. 왕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빠져 꿈속에서 깊은 상열(相悅)을 나눴지요. 헤어질 무렵에 왕이 그녀를 붙잡자, 울면서 여인은 말했습니다. 저는 무산(巫山)의 남쪽에 살고 있는지라 여기서 지체하고 있을 수 없사옵니다. 다만 아침이 되면 구름이 되어 당신 위에 올라앉을 것이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당신을 적실 것입니다. 아침구름 저녁비(朝雲暮雨)로 우린 늘 사랑을 나눌 수 있사옵니다. 그렇게 말하며 떠나갔지요. 그 이후로 운우(雲雨)의 정은 바로 남녀의 정사를 말하는 것이 되었지요. 두 사람이 정사를 나누는 자리가 바로 무산의 양대(陽臺) 아래라고 합니다. 단양 쌍룡계곡의 옥염대와 명경대는 저 선녀가 왕과 회포를 나누는 잠자리가 아니올지요. 옥염은 바로 아침구름이요, 명경은 저녁비이니 양대(兩臺ㆍ두 바위 누대)가 양대(陽臺) 아니겠습니까."


퇴계가 크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밝달선비다운 감칠맛 나는 풀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 계곡은 선암곡(仙巖谷) 중에서도 기이하고 다채로워 절절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쌍룡설화에서 이름을 따와 쌍룡곡이라고 하니, 옥염대와 명경대의 묘미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저는 이곳의 주인이 둘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희디흰 바위마루들과 그 사이를 흘러내리는 벽계수(碧溪水)입니다. 바위씨(氏)는 한자리에 굳게 앉아서 마음을 닦는 부동(不動)의 수행자이며, 물결씨(氏)는 끝없이 부딪치고 흐르며 마음을 닦는 유행(流行)의 수행자입니다. 바위들은 몸을 낮추고 남들을 위에 앉히기를 즐겨하고 물들은 고개를 낮춰 한없이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자연의 겸허와 예경(禮敬)을 배우는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계곡을 겸수공석(謙水恭石)이라 부르면 어떨까 합니다."


공서가 소리쳤다.


"도학자의 풍격이 저절로 드러나는 이름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바위와 그것보다 더욱 낮추는 물을 겸수공석이란 말로 생생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이는 또한 퇴계의 오랜 수행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일상 속의 성실과 경건'과도 합치되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겸수공석 계곡은 퇴계 계곡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계속>


▶이전회차
[千日野話]단양 제5경은 '취암무천'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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