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봄이 애틋합니다. 그 짧음에 더욱 그렇습니다. 화려한 색채와 유혹적인 향기로 마음을 들뜨게 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리니 말입니다. 올해는 더욱 더 합니다. 이상기온으로 벚꽃을 비롯한 봄꽃들이 화르르 몰려왔다 우르르 사라져버렸습니다. 어느새 저만치 달아난 봄을 잡기 위해 충남 서산으로의 여정을 권합니다. 먼저 '마음을 여는 절집' 개심사(開心寺)가 그곳입니다. 개심사 오색벚꽃은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피는 청벚꽃도 화려합니다. 심검당의 휘어진 나무는 얼마나 정감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이뿐인가요. 이름부터 남다른 황금산과 서해바다를 담아내는 팔봉산이 그렇습니다. 강당골계곡에 꼭꼭 숨어있는 서산마애삼존불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익은 봄날의 서산은 이처럼 어느곳 하나 버릴것 없는 알토란 같은 충만함으로 가득합니다.
◇개심사에만 피는 청벚 등 오색벚꽃 이제 시작
쉼 없이 내달려온 일상이 문득 덧없이 느껴진다면 고즈넉한 절집 개심사에서 심호흡 해보자. 한 번, 두 번, 세 번….
개심사는 자그마한 절이지만 아름답고 운치있다. 백제가 망하기(660년) 불과 6년 전인 의자왕 14년, 서기 654년에 창건되었으니 말 그대로 천년 고찰이다.
상왕산 개심사라는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들어서는 숲길은 빼어나다. 숨이 찰 정도는 아니지만 경사가 있어 느릿 느릿 발걸음을 늦추고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준다. 심호흡을 하면 솔향이 폐부 깊숙히 파고든다. 몸과 마음은 어느새 맑아진다.
경내에 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직사각형의 기다란 연못과 외나무 다리다. 연못 왼쪽으로 난 흙길도 있지만 외나무다리를 건너 층층계단을 오르는 맛이 그럴듯하다.
심검당(尋劍堂)으로 간다. 심검당의 휘어진 대들보는 자연스러운 파격미에 고풍스럽고 정감이 넘쳐난다. 마음껏 휜 나무의 곡선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돋보이게 살린 솜씨가 놀라울뿐이다.
마종기 시인은 "이 산사는 '비틀리고 찢어진 늙은 나무기둥'으로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라고 적기도 했다.
개심사의 자랑은 또 있다. 바로 벚꽃이다. 개심사 벚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게 핀다. 4월 20일경 개화를 시작해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만개한다. 다른 지역보다 보름정도 늦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고온으로 예년보다 일찍 세상과 만났다. 벚꽃은 백색, 연분홍, 진분홍, 옥색, 적색꽃을 피운다. 일제히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오색벚꽃들과 마주하면 그 황홀경에 말문이 막힌다.
붉은 빛이 덜한 벚꽃은 청벚꽃이다. 꽃심이 청포도 같은 연한 녹색이어서 꽃이 푸르스름해 보인다. 청벚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심사에만 있다. 탐스럽게 매달린 벚꽃의 정취도 좋지만 꽃잎이 하나둘 낙화해 절집마당을 울긋불긋 수놓은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팔봉산 1~4봉 백미…작은거인 1봉 절경
팔봉산하면 강원 홍천의 팔봉산을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서산에도 8개의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일렬로 도열한 팔봉산(362m)이 있다.
가장 큰 매력은 뛰어난 조망과 산정의 암릉미다. 정상에 서면 멀리 서해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과 너른 들판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팔봉산은 서산시 어송리와 양길리, 금학리에 걸쳐 있다. 1~8봉까지는 양길리마을에서 올라 어송리마을로 내려서는 종주코스로 3시간쯤 걸린다. 하지만 굳이 종주할 필요는 없다. 산이 지닌 아름다운 풍광이 1~4봉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양길리 주차장이 들머리다. 널찍한 산길을 따라 30여분 오르자 좌측으로 거대한 바위군락이 듬직하게 솟아 있다. 제1봉 감투봉(노적봉)이다. 뿌리부터 정상까지 거대한 바위가 탑을 쌓듯 하늘로 치솟은 모양이 신비롭다. 1봉은 해발고도가 210m에 불과하지만 암봉 정상에 올라 서북쪽을 내려다보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온다. 눈앞을 가리던 큰 바위를 돌아 앞으로 나가자 갑자기 시야가 툭 트이는 장쾌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날씨가 좋은날에는 서산들녘과 그 뒤의 태안반도, 가로림만 그리고 멀리 웅도ㆍ고파도까지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2봉은 힘센 용사의 어깨를 닮아 '어깨봉'이라 부른다. 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급경사길을 지나면 철계단이 이어진다. 정상 못미처에 우럭을 빼닮은 우럭바위가 있다.
2봉에서 정상인 3봉 오르는 구간은 바위 사이로 난 길이 좁고 가파르다. 정상은 철계단과 로프 구간을 지난 후 통천굴을 통과해 또 다시 철계단을 올라야 모습을 드러낸다.
산정은 기암으로 가득하다. 높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발아래 풍광도 까마득하다.
정상에서 발길을 돌려도 되지만 3봉에서 지척인 4봉까지 다녀와도 된다. 4봉에 오르면 정상에 들어앉은 늠름한 자태의 암릉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하산길은 편하다. 쉼터를 지나 대숲에 이르면 운암사지다. 운암사는 '항상 구름이 머문다'는 옛 절이다. 하산길의 마지막 감동은 낙조가 함께 한다.
◇황금산 바다 품은 코끼리바위 숨은 비경
바다를 품은 아주 작은 산이다. 산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인 해발 156m다. 하지만 숲길과 절경을 자랑하는 해안절벽과 때 묻지 않은 바다로 유명하다.
산의 서쪽은 바위절벽으로 깊은 바다와 접해 있으며 2개의 해식동굴(굴금, 끝굴)은 예부터 금을 캐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서산 아라메길'의 제 3코스의 출발과 종착지를 겸하고 있다.
황금산의 원래 이름은 '항금산(亢金山)'으로 산이 있는 전체구역을 총칭해 '항금'이라 했다고 한다. 예전부터 평범한 금을 뜻했던 '황금'에 비해 '항금'은 고귀한 금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항금산'으로 불리다가 실제로 금이 발견되면서 황금산이 되었다고 한다.
길은 호젓한 소나무 숲길이다. 솔향기를 맡으며 걷다 보면 해송 사이로 보이는 바다의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사거리 쉼터로 불리는 갈림길에 도착하면 오른쪽으로는 정상에, 왼쪽으로 내려가면 해안가인 코끼리 바위로 간다.
10여분 숲길을 내려서면 몽돌해변이다. 황금산 아래 펼쳐진 몽돌해변의 손꼽히는 절경은 바로 코끼리 바위다. 영락없이 코끼리가 바다에 긴 코를 늘어뜨리고 바닷물을 들이키는 듯한 모습이다. 절벽을 향해 달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와 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은 굴과 따개비의 독특한 무늬가 어우러져 인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관광객들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들며 기념사진을 찍게 만드는 장소다.
코끼리 바위의 상단부에 걸린 밧줄을 붙잡고 올라 반대편 해변으로 내려서면 또 다른 풍경의 기암괴석들을 만나게 된다. 우뚝 솟은 절벽 위 암벽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 두 그루가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걸을 때마다 자그락자그락 소리를 내는 몽돌해변은 은빛 모래가 깔린 백사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매월 음력 보름과 그믐인 사리 때는 해변을 따라 금굴까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서산=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가는길=개심사와 마애삼존불상은 서해안고속도로로 서산 나들목을 나와 운산면 소재지(덕산ㆍ해미 방면 우회전)를 지나 해미 방면으로 간다. 팔봉산과 황금산은 서산나들목에서 태안방면으로 서산읍내를 지나 팔봉면으로 가면 된다.
▲볼거리=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마애삼존불상을 빼놓을수없다. 또 8월에 한국을 찾는 교황이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해미읍성도 좋다. 봄날의 운산면 목장길 드라이브, 간월도낙조, 천수만, 유기방가옥 등도 있다.
▲먹거리=마애삼존불상 입구에 있는 용현집(041-663-4090)은 2대에 걸쳐 30여년간 사랑 받아온 어죽 전문점이다. 해미읍성 정문 부근에 있는 중국집 영성각(041-688-2047)은 짬뽕맛으로 유명하다. 해미읍사무소 앞에 있는 해미쌈밥(041-688-5084)의 우렁된장도 일품이다. 팔봉산에서 가까운 구도항에선 박속밀국낙지탕을 맛볼수 있다. 양길주차장 인근에 코뚜레(041-662-7788), 팔봉산가든(041-662-1718)은 한식과 산채음식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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