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프로는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창원 LG의 센터 김종규(23)는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과 신인상을 모두 이뤘다. 2000-2001시즌 이규섭(37·서울 삼성), 2001-2002시즌 김승현(36·대구 동양), 2012-2013시즌 최부경(25·서울 SK)에 이은 역대 프로농구 네 번째 위업이다. 그럼에도 그는 14일 시상식에서 다소 풀이 죽어 있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달성한 세 번째 주역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LG는 10일 끝난 챔피언결정전에서 울산 모비스에 2승 4패로 밀려 준우승했다. 김종규의 움직임은 정규리그에 미치지 못했다. 6경기에서 평균 26분14초를 뛰며 5.3득점 2.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46경기에 출장한 정규리그에서는 평균 29분49초를 뛰며 10.7득점 5.9리바운드로 선전했다. 김종규는 “큰 경기는 확실히 다르더라.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신인왕을 거머쥔 직후에도 “내가 잘해서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독, 코치, 동료 선수들이 잘해준 덕”이라며 “더 열심히 노력하라고 준 상인 것 같다”고 했다.
김종규는 “프로농구를 한 번 뒤집어 보겠다”라고 밝힌 신인 드래프트에서의 패기는 잠시 접어뒀다. 일주일가량 휴식을 취하고 바로 내년 시즌을 준비할 계획이다.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일단 몸을 단단하게 만든다. 챔피언결정전에서 함지훈(30), 로드 벤슨(30) 등과 몸싸움을 하면서 웨이트트레이닝의 절실함을 깨달았다. 김종규는 “근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비시즌 동안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정신력 강화다. 그는 “챔피언결정전을 치르면서 멘탈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며 “이번 경험이 농구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약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챔피언결정전을 떠올려 마음을 다잡겠다는 각오다. 새로운 시즌을 바라보는 김종규를 만나봤다.
다음은 김종규와의 일문일답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에 아쉬움이 많아 보인다.
재미있고 행복한 데뷔 시즌이었지만 마지막에 웃지 못했다.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 기쁘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움직임이 다소 소극적이었다.
첫 번째(9득점 4리바운드)와 두 번째 경기(6득점 2리바운드)에서 고전했다. 생각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 이후 코트에서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됐다. 모든 경기가 치열하게 전개되다 보니 과감하게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자칫 실수를 저지르면 흐름이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너무 신중했던 것 같다. 슛 감각이 떨어져 자신감마저 잃고 말았다.
수비에서는 함지훈에게 적잖은 점수(평균 11.7점)를 내줬다.
(공격 패턴이 다양해서) 막기가 쉽지 않았다. 정말 힘든 상대였다.
풍부한 경험으로 다음 시즌 더 강해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은데.
성숙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멘탈의 중요성을 확실히 깨달았다. 챔피언결정전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너무 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잊지 않겠다. 경기나 훈련에서 힘들 때마다 떠올려 마음을 다잡을 거다.
네 번째 경기 4쿼터 초반 벤슨을 제치고 덩크슛을 꽂았다. 그러나 벤슨을 보고 거수 경계를 해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싶어 일부러 벤슨의 퍼포먼스를 따라했다. 솔직히 이전에 당한 걸 갚아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후회는 없다. 이어진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 벤슨은 출국 전 인터뷰에서 “김종규가 내게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를 보면 마른 체형이었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른다”며 “웨이트트레이닝 등으로 몸을 키우고 경험을 쌓는다면 충분히 리그를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덩크슛만큼은 시원하고 강렬했다.
나도 그런 탄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근력이 많은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 해낸다. 물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무대가 확실히 다르더라. 조금 더 즐기면서 했다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그런 장점을 선수생활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
챔피언결정전이 계속 마음에 걸리나 보다.
잘 못하더라도 조금 더 부딪혀보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였어야 했다. 그게 너무 아쉽다. 부진한 성적이 아쉬운 게 아니고. 그래도 한 번 겪었으니 다음에는 잘 할 것 같다. 압박을 이겨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챔피언결정전이 끝나고 선수들과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나.
기대에 미치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선배들이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며 격려해줬다. 위로의 말 하나하나가 정말 큰 힘이 됐다. ‘좋은 동료들과 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김진 감독님도 빼놓을 수 없다. “고맙다. 종규야. 그동안 수고가 많았어”라며 어깨를 두들겨주시는데 죄송하고 고마웠다. 다음에는 믿음에 꼭 보답하고 싶다.
경기가 끝나고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
창원까지 내려오셨는데 제대로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이전까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창원에 내려와 응원한 경기를 모두 이겼는데 이번에 흐름이 깨졌다. 아들이 반등하길 간절히 바라셨을 텐데. 아들 앞에서 한 번도 아쉬운 기색을 보인 적이 없는 부모님이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농구 이야기도 잘 꺼내시지 않는다. 늘 조심스러우신데 앞으로는 경기를 편하게 보셨으면 좋겠다.
경희대 동기 김민구(23·전주 KCC)와 두경민(23·원주 동부)은 뭐라고 했나.
그 친구들도 만나면 농구 얘기를 잘 안 한다. 서로 말 한 마디에 신경을 쓰일 수 있어 조심스러워한다. 그런데 이번에 민구가 딱 한 마디를 해주더라. “너답게 해”라고.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친구들과 함께 갈 생각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은 꼭 갈 거다. 일주일 정도만 농구를 잊고 지내고 싶다. 돌아오면 다시 농구공을 붙들고 살 거다. 더 발전된 모습을 선보여야 하지 않겠나.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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