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즌에 아버지와 나는 하이버리에 대여섯 번쯤 더 갔다. 1969년 3월 중순이 되자 나는 단순히 팬이라고만은 부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침에 눈뜰 때부터 신경이 곤두서서 속이 메슥거렸고, 그런 증세는 점점 심해지다가, 아스널이 두 골 차이로 앞서 나가 이길 거라는 안도감이 들기 시작할 때에야 괜찮아졌다."
하이버리는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아스널이 에미리트 스타디움 이전에 본거지로 사용한 경기장이다. 그러므로 이 글의 주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아스널의 '광팬'이다. 닉 혼비.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와 살면서, 매주 한 번 아들을 보러 오는 아버지와 함께 어느 날 찾아간 하이버리에서 혼비는 아스날과 스토크시티의 경기를 본다. 그리하여 선택받은 자의 열락(悅樂)이요 때로는 천형(天刑)과도 같았던 거너스(아스널의 애칭)의 삶이 시작되었다.
맨 위의 글은 혼비가 베스트셀러 '피버 피치(Fever Pitch)'에 썼다. 혼비는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다음 '피버 피치'를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골수 아스널 팬이 아스널만을 생각하며 쓴 책이다. 그러나 스포츠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팀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았다. 혼비에게 '팬'이 되는 일의 의미는 이렇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는 행위는 비판적 시각 없이 오직 한 가지 대상을 응원하고 거기 속하는 일의 가치이다."
"축구에 있어서 충성심이란 용기나 친절 같은 도덕적 선택이 아님을 알았다. 그것은 사마귀나 혹처럼 일단 생겨나면 떼어낼 수 없다. 결혼도 그 정도로 융통성 없는 관계는 아니다."
현대 스포츠에서 팬은 '팬덤(Fandom)' 현상을 낳는다. 팬덤은 광신도를 뜻하는 'fanatic'의 'fan'과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dom'을 합성한 말이다. 대중적인 특정 인물이나 분야에 편향된 사람들을 묶어서 정의한 개념으로, 팬과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 현상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존 피스크는 팬덤의 주요 특성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차별과 구별. 팬들은 자신이 선택한 스타(또는 팀)를 통해 스스로를 남과 구별하고 같은 스타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둘째, 생산과 참여. 팬들은 수동적인 수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결과를 창출한다. 셋째, 자본 축적. 팬들은 스타나 팀과 관련된 상품을 수집하고 소유함으로써 그들만의 자본을 축적한다. 그러므로 "정말 팬이라면 팀이 잘되도록 응원이나 열심히 하라"는 식으로 대해서는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팬들의 규모와 수준이 각종 프로스포츠가 출범하던 1980년대 초반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놀라운 점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본고장 스포츠의 수준 높은 콘텐츠를 접하면서도 국내 프로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접지 않는 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전체로 보아 프로스포츠를 즐기는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은 가장 뜨거운 응원을 보내 주는 '같은 편'이지만 실패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판자고, 과정에 대한 감시자다. 이들은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존재인데, 폭약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장착했다. 다시 혼비의 말.
"우리 가운데 이성적으로 응원할 팀을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다 보니 그 팀을 응원하게 됐다. 그래서 팀이 2부리그에서 3부리그로 강등되거나, 뛰어난 선수들을 팔아치우거나, 형편없는 선수를 사들이거나, '멀대'같은 최전방 공격수에게 공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는 일이 700번이나 반복되어도 우리는 그저 욕이나 하고 집에 돌아가 2주 동안 속앓이를 하다가 다시 축구장으로 돌아와서 또 경을 친다. 나도 왜 아스널을 사랑하게 됐는지 자세히 모르겠다."
필자에게도 응원하는 팀이 있다. 변변한 성적을 올리지 못해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인 서울의 오래된 프로야구팀. 그 팀의 팬으로 사는 일은 때로 '천형'이지만, 그 팀의 팬으로 살 수 없다면 하루하루가 훨씬 더 불행할 것이다.
허진석 스포츠레저 부장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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