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핫(Hot)’한 그녀들이 온다. 스포츠채널을 대표하는 여성 아나운서들이 프로야구 개막과 더불어 입심대결을 벼르고 있다.
올해 간판 야구프로그램 메인 MC를 맡은 공서영(32)과 최희(28·이상 XTM), 김민아(31·SBS스포츠), 배지현(27·MBC스포츠플러스), 윤태진(27·KBSN스포츠), 김선신(27·MBC스포츠플러스) 씨가 그들이다. 야구장의 불빛이 꺼질 때쯤 이들의 ‘썰전’은 시작된다. 거의 같은 시간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선다. 야구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들어두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은 지난주 개막을 앞두고 제작진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경기장의 ‘플레이볼’ 사인은 ‘스탠바이’, ‘게임세트’ 사인은 ‘온 에어’다. 29일 개막전과 더불어 아나운서들의 레이스도 시작됐다. 이들은 “아무 탈 없이 즐겁게 방송하며 한 시즌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 해내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도 내비쳤다.
◆ ‘타석에 들어가는 타자의 심정’으로 방송하고 싶다
공서영, 최희 두 아나운서는 케이블채널 XTM의 야구프로그램 ‘베이스볼워너비’ 공동 MC를 맡는다. 주중 3연전은 최희, 주말 3연전은 공서영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는다.
특히 공 아나운서에게 베이스볼워너비는 특별하다. 2012년 7월 프리 선언 후 단독진행을 맡은 첫 프로그램이다. 방송인 공서영의 이름을 알리는 데 베이스볼워너비 효과는 컸다. 걸그룹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에 톡톡 튀는 진행 솜씨는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기존 아나운서 이미지를 벗어던진 육감적인 옷차림은 연일 온라인 공간과 야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그는 “성격상 어디 하나에 빠지면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라며 “나에게 야구가 그랬고 베이스볼워너비가 그랬다. 하루하루가 감사했고 방송하는 게 즐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매일 같이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냉정한 평가를 더 찾아보기도 한다”고 했다.
최희 아나운서는 지난해까지 KBSN스포츠 ‘아이러브베이스볼’의 안방마님이었다. 지난 4년간 진행을 맡았다. 본인에게도 애착이 큰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지난해 12월 퇴사했다. 그리고 올해는 공 아나운서와 베이스볼워너비로 새 도전을 시작한다. 그는 “제작진에서 믿고 프로그램을 맡겨 준 만큼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최 아나운서의 진행은 차분하고 편안하다. 스스로도 자신의 장점과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안다. 그래서 새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킬 생각이다. 그는 “베이스볼워너비를 맡았다고 하니까 의상이 어떻게 바뀌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더라”며 “구성이 다르고 제작진과 처음 호흡을 맞추지만 최희답게, 최희다운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겠다”고 했다.
지난해까지 MBC스포츠플러스에 몸담았던 김민아 아나운서는 SBS스포츠로 둥지를 옮겼다. 결혼과 퇴사, 새 소속사와의 계약, 새 프로그램 발탁 등을 모두 3월 한 달 동안 마쳤다. 올해는 ‘베이스S’의 메인 MC로 신예 황보미(26) 아나운서와 함께 시청자들을 만난다. 그는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SBS스포츠 2014 프로야구 기자간담회’에서 스스로를 ‘구원투수’에 비유했다. 그는 “아줌마를 선택해 준 SBS스포츠에 감사하다”며 “왜 내가 이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드리겠다”고 했다.
윤태진, 김선신 아나운서에게도 2014년은 특별한 해다. 1987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입사 4년 만에 간판 야구프로그램 메인 MC 자리에 올랐다. 윤 아나운서는 ‘아이러브베이스볼’을, 김 아나운서는 ‘베이스볼투나잇’을 책임진다.
윤 아나운서는 앞서 진행을 맡았던 선배들이 워낙 좋은 모습을 보여 부담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메인 MC라면 그 부담마저도 안고 가야 한다며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상대와 보는 사람이 편안한 방송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장을 뛰며 인터뷰를 할 때도 상대가 편안한 모습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끝냈을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며 “잘 하려고 욕심을 내기보다는 내가 가진 모습을 편안하게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김선신 아나운서는 “올해가 여느 해보다 더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입을 뗐다. MBC스포츠플러스가 국내 야구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까지 중계하면서 해야 할 역할이 더 생겼다. 그래서 지난달에는 약 3주 동안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취재를 위해 미국도 다녀왔다. 당초 국내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는 주중은 물론 주말까지 ‘베이스볼투나잇’을 진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SBS스포츠 소속이던 배지현(27) 아나운서가 내달 4일부터 주말 3연전 방송을 맡기로 하면서 다소 부담을 덜었다.
지난해까지 SBS스포츠에서 맹활약한 배 아나운서는 30일 MBC스포츠플러스 채널의 중계방송 화면에 깜짝등장해 자신의 이직 사실을 알렸다. 그는 “올해도 야구팬 여러분들과 함께 호흡하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배 아나운서는 4월 4일부터 ‘베이스볼투나잇’의 주말 3연전 방송을 진행한다. 2010년 SBS ESPN(현 SBS스포츠)에 입사한 배 아나운서는 지난달 갑작스럽게 사직해 궁금증과 함께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 야구의 매력…순간순간 이뤄지는 소통과 교감
김선신 아나운서에게 야구는 ‘기다림에 보상을 주는 종목’이다. 패색이 짙은 경기라도 9회말 2아웃에 역전 만루홈런으로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종목이 야구라는 뜻이다. 야구는 기다린 만큼의 짜릿한 감동과 환희를 선사한다고 했다. 그는 “야구는 시즌도 길지만 비시즌 역시 길다”며 “야구팬들은 새 시즌에서 비시즌 동안의 기다림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서영 아나운서는 야구를 ‘알면 알수록 숙제가 많아지는 종목’이라고 했다. 한때 그는 야구에 빠져 살았다. 2005년 가수 생활을 접은 뒤 공백기 동안 가장 가까이 했던 게 야구였다. 야구를 보고, 야구를 소재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다. 스포츠 아나운서에 도전한 것도 다른 사람들과 야구로 소통하고, 야구에 관한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야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고, 예기치 못한 변수도 많았다. 공 아나운서는 그래서 야구가 더 재미있다고 했다. “알면 알수록 정리가 안 되고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들이 많아진다”며 “한 경기 한 경기를 볼 때마다 덩달아 숙제도 많아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윤태진 아나운서는 야구가 그려내는 상황이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위기 뒤에 기회, 기회 뒤에 위기’라는 말처럼 야구와 삶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야구를 통해 가끔 스스로를 되돌아본다고 했다.
특히 네 살 때부터 무용을 시작해 무용 밖에 모르고 살아 온 윤 아나운서에게도 스포츠 아나운서는 위기 뒤에 기회로 다가왔다. 무용을 그만둬야만 했던 위기는 아나운서 도전이라는 기회로 돌아왔다. 우연찮게 참가한 2010년 춘향선발대회에서 ‘선’에 입상하며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고, 이를 계기로 방송인을 꿈꿨다.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적시타로 연결했다. 아나운서 준비를 시작하고 첫 번째로 응시한 시험에서 KBSN에 합격하며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최희 아나운서는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눈빛과 몸짓을 통해 만들어지는 긴장감은 야구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했다. 축구와 농구가 서로 부딪치면서 박진감을 즐기는 종목이라면 야구에는 순간순간 이뤄지는 소통과 교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짧은 찰나에 눈빛으로 사인을 주고받고 이를 플레이로 연결하는 것은 야구만의 매력”이라고 했다.
◆ 인터뷰 뒤 자신이 검색어 순위 올랐다면 반성해야
진한 화장에 말쑥한 차림. 온화한 표정에 조리 있는 말솜씨까지. 브라운관 속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모습은 화려하다. 그들의 이름 앞에 붙는 ‘여신’이라는 수식어가 이를 잘 증명한다.
하지만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화려함에 심취하는 일이다. 때론 스포트라이트에 우쭐하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공서영 아나운서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변의 관심에 혹할 때가 있다”면서도 “그런 관심에 젖지 않고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김선신 아나운서도 “화려함만을 전부로 스포츠 아나운서들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화려함 뒤에는 치열함도 외로움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안고 갈 수 있을 정도로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카메라 앞에서 누구보다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건 이들의 숙명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한 마디를 더 듣기 위해 몸싸움을 하고, 마이크를 들이민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전국의 야구장을 돌아다녀야 한다. 또 인터뷰 5분을 위해 1~2시간 머리를 싸매야 하는 게 그들의 업무이고 생활이다.
윤태진 아나운서는 “자신이 마치 주연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는 걸 주의해야 한다”며 “적어도 현장에서는 조연이 되려고 노력한다. 인터뷰 뒤 선수가 아닌 자신이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면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통의 선수들은 쉽게 말을 할 수 있도록 훈련된 사람들이 아니다. 인터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건 인터뷰를 시도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했다.
야구가 남성 중심의 스포츠다 보니 여성 아나운서들이 넘어야 할 ‘유리천장’도 적지 않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여성 아나운서들이 덕아웃에서 감독과 선수들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 만큼 진입장벽이 높았다. 선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는 시도를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최희 아나운서는 “불합리한 관행이 개선되고 일하기 좋은 환경 쪽으로 변하고 있다”며 “요새는 먼저 인사해 주고 알아봐 주기도 해 고맙다. 후배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줄여나가는 데 나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 내가 꿈꾸는 방송인…“그립고 기분 좋아지는 사람”
윤태진 아나운서는 “시청자들이 그리워하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석류(31) 전 아나운서를 예로 들었다. 김 아나운서는 2007년 KBSN에 입사해 아이러브베이스볼 등을 진행하다 2012년 김태균(32·한화)과의 결혼을 위해 퇴사했다. 윤 아나운서는 “석류선배가 방송을 그만둔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석류가 최고였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필요로 하는 방송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최희 아나운서는 김성주(42) 전 MBC 아나운서처럼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방송인이 되는 게 꿈이다. 그래서 새 소속사에서는 방송의 영역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JTBC ‘썰전’, Y-STAR ‘부부감별쇼 리얼리?’ 등 예능에 출연하며 외연을 넓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TV로 볼 때는 몰랐는데 예능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더라”며 “스포츠 아나운서들도 좀 더 활동영역을 넓혀 다양한 방송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고 있으면 괜히 흐뭇해지고 기분 좋아지는 방송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제나 좋은 기운이 있고 밝은 느낌을 선사하는 방송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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