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김민진 차장
#말쑥하게 차려입은 60대 노신사는 최근 한 대기업의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갔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해당 채용박람회와 관련해 언론에 보도된 '중장년층과 여성 채용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대목을 보고 용기를 내 이곳을 찾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느낀 실망감은 여느 채용박람회를 갔을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직원규모 300명이 조금 넘는 A기업의 실제 장애인 고용률은 제로(0)에 가깝다. 하지만 관할 노동청에 신고된 장애인 고용인원은 고용노동부가 정한 의무고용비율에 근접해 있다. 이 회사는 재직하는 임직원 중 과거 사고나 수술 등으로 장애등급을 갖고 있는 직원을 찾아 명단에 넣고, 모자란 인원은 (실제 고용은 하지 않으면서) 이름만 올려 의무고용비율을 맞추고 있다.
상당수의 기업들이 '고용확대'를 최고의 홍보수단으로 삼고 있다. 기업의 고용은 기업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벌이는 필요에 의한 결정이지 실업자들에게 수혜를 주기 위해 일부러 만든 행위는 아니다. 그렇다고 기업이 잘돼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시간 선택제 일자리 확대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것에 딴죽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 과정에서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한 대기업은 '기업과 지역사회의 상생ㆍ발전하는 분위기 조성에 일조하자는 차원'에서 일자리 1000개를 만들겠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내용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서울시내에서 지역주민을 우선 채용하겠다는 발상은 애당초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다(서울이라는 도시 특성상 이런 약속 자체가 의미가 있나 싶다).
일자리는 대부분 이 대기업 협력업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상당수가 계약직이거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자리다. 나이 제한이 없다고 했지만 중장년층은 이력서 드밀 곳도 많지 않았다. 결국 이 채용박람회는 '중소기업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할 20~30대 찾는 자리'였던 셈이다.
기업도 할 말은 있겠다. 맡긴 것 찾아내라는듯 걸핏하면 정부가 눈치를 주니 바늘도 쇠몽둥이라 하고 생색을 내는 수 밖에 없지 않겠나. 세무조사나 총수의 구속 또는 검찰 조사, 갑을 논란 등 캥기는 게 많은 기업일수록 유독 정부 정책에 민감하다.
노동집약적인 제조업들은 2000년대 이후 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지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서비스산업을 더 발전시켜 일자리를 늘려야하지만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서비스산업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유통ㆍ식음료 등 내수산업은 고용효과가 높다. 내수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소비진작과 규제개혁이 필요하다. 결국 현 단계에서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는 처방은 내수활성화를 통한 경제규모 확대, 이것이 고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그래야만 기업들도 보다 진정성 있게 고용 정책을 펼 수 있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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