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은석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연일 '규제개혁'을 외치며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규제법안을 손봐야할 국회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여야가 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유리한 법 제ㆍ개정에만 관심을 쏟거나 시급히 손봐야할 규제개혁 관련 법들을 다른 사안과 연계해 처리하려는 악습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살리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포함해 내놓은 '주택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국회는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정쟁에 휩싸이면서 또 다시 법안 처리를 미뤘다.
새누리당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구룡마을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야당이 반발하며 법안 심의를 거부했다. 이에 더해 야당은 전ㆍ월세 상한제 도입이라는 또 다른 규제법안을 내놓고 여당과 빅딜을 시도하고 있다. 4월 국회는 물론 6월 국회에서도 여야가 법안을 처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박 대통령이 12일 규제개혁을 주문하며 콕 집어 언급한 '관광진흥법'도 야당의 반대에 막혀 있다. 이 법안은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학교 주변에 관광숙박시설 건립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의 최대 걸림돌인 '숙박시설 부족' 해결을 서둘러야 하지만 야당은 "재벌 특혜"라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관광활성화 법안으로 외국인들에게 선상 카지노를 허용하는 '크루즈산업발전법'도 야당이 "사행산업 조장"을 이유로 막아섰다.
여야가 협상과정에서 오히려 불필요한 규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국회는 지난 연말 초ㆍ중ㆍ고교의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ㆍ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을 처리했다. 앞서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에 초점을 맞춰 공교육기관의 선행학습 금지를 골자로 한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선행학습 금지 대상을 사교육기관으로 확대하는 별도법안을 제출하며 법안 취지가 크게 변질됐다.
사교육기관에 대한 규제는 위헌 소지가 있는데다 정부가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기 어려워 '실효성 없는 대책'이란 비판이 잇따른다. 더욱이 이 법안 처리과정에서 민주당이 요구한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지원법 처리를 연계해 정치적 거래가 아니냐는 비판도 받는다.
새누리당은 다음주중 당내에 '규제개혁특위'를 설치해 본격적인 규제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여당과 정부가 입을 맞춰 규제개혁을 추진하다고 하더라도 야당의 반대에 막히면 법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규제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규제법안을 만들자는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협상이 불가피하다. '절름발이 규제개혁'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이 때문이다.
최은석 기자 cha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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