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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4초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선수는 누구일까? 쇼트트랙 3관왕 빅토르 안? 여자500m 2연속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 2회 연속 금메달과 함께 통산 열두번째 우승을 해낸 캐나다 남자 아이스하키 팀?


필자의 생각은 이상화 선수와 김연아 선수 사이에서 엇갈린다. 그러나 서서히 한 쪽으로 마음을 정할 수 있게 됐다. 외신을 통해 읽은 몇몇 칼럼은 필자의 판단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예를 들어 브라이언 그레이엄은 지난 23일(한국시간) '더 애틀랜틱'의 인터넷판에 "그녀는 피겨의 전설이 되어 떠났다. (중략) 이번 대회의 결과로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김연아 선수의 위대한 유산을 결코 흠잡을 수 없다"고 썼다.


피겨스케이팅 칼럼니스트 제스 헬름스는 26일 미국 야후 홈페이지에 "김연아가 받아야 할 금메달을 러시아 마피아 정치가 강탈했다"고 규탄하면서 "국제빙상연맹(ISU)은 공식 사과와 심판 징계, 재심사를 해야 한다"고 썼다.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필자는 은메달을 갖고도 금빛 아우라에 싸여 떠난 여왕의 빈자리를 보았다. 필자의 내면에서는 극적인 화학반응과 더불어 정서의 역전이 이루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는 그 전까지 김연아 선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의 내면에서는 마이너리티의 본성이 숨쉬는 것 같다. 필자에게는 '대세'가 없다. 스포츠 기자를 하면서도 슈퍼스타보다 저평가된 수훈선수를 찾는 데 공을 들였다. 필자는 지배적인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비틀스만 빼고.


한때 시오노 나나미의 광풍이 일었다. '로마인 이야기'는 교양인의 필독서였다. 그러나 나나미의 문장도 철학도 나와 맞지 않았다. 전쟁 이야기를 할 때는 광기를 느꼈다. 일본 왕족이 다닌다는 가쿠슈인(學習院) 대학을 나온 이 여성의 이미지는 '칼잡이'다.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포에니 전쟁을 '한니발 전쟁'이라고 불렀다. 드물게도 패자의 이름이다. 그리고 책 한 권을 피로 물들인다. 수십만명이 죽어 나간다. 전쟁 얘기는 늘 흥미롭다. 그런데 카르타고가 멸망할 무렵,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는 승자와 패자의 구분밖에 없다…. (중략) 정의와 비정의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이 범죄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중략) 전쟁이라는 악업을 승자와 패자가 아니라 정의와 비정의로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렇게 구분했다고 해서 전쟁이 소멸한 것도 아닌데."(369~370쪽)


싸늘하다. 아베 신조의 '꼴통 사고'와 뭐가 다른가. '일본은 졌을뿐 죄는 없다. 전범(戰犯)이란 전쟁에서 이긴 미국의 구분일 뿐이다.' 나나미는 카르타고를 빌어 넋두리를 늘어놓았고, 반면 A급 전범의 피가 흐르는 아베는 숨겨온 본심을 드러냈다.


요즘 일본의 대중 정치인들은 막말을 쏟아낸다. 소치올림픽 기간에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아사다 마오를 험구했다. "중요할 때마다 넘어진다"고. 손녀뻘 되는 아사다는 의젓했다. "모리씨가 (지금은)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지 않을까." 나잇값 못한 모리의 완패다.


나나미는 머리에 뭐라도 들었지만 아베는 생각이나 해가며 떠드는지 모르겠다. 망언으로 전쟁 범죄자들의 추악한 유산을 씻을 수 있는가. 일본에서도 양심적 지식인들이 있어 반성과 회개를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허진석 스포츠레저부장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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