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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경쟁의 체화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3초

일요일 새벽 5시. 전화벨이 울렸다. 한 달 전 등산을 가기로 약속했던 후배였다. 당초 세 명이 약속했는데 한 명이 펑크까지 낸 상태라 "다음에 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듯 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한다는 고집으로 버틴 인생, 산 입구만 가도 반은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북한산초등학교 앞에서 라면 한 그릇씩 하고, 씩씩하게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차까지 다니는 도로를 한참 걷다 보니 1차 선택의 시간이 닥쳤다. 콘크리트 포장도로 쪽으로 좀 더 가는 노적사 쪽을 택할 것인가, 좀 더 험한 백운대ㆍ원효봉 길로 갈 것인가.

그래도 산을 왔는데 정상 쪽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백운대 쪽을 택했다. 콘크리트 포장도로 대신 돌길과 흙길이 나왔지만 그래도 걸을 만 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2차 관문. 원효봉과 백운대가 갈라지는 길이었다. 1년 반 전, 회사 단합대회 때 이후 첫 등산이었다. 당시 원효봉을 등반했다. 갈림길에서 불과 600m 거리인데도 중간에 쉬다 가다를 반복했었다. 발길이 자연스레 원효봉 쪽으로 쏠리던 찰나, 후배가 천천히 쉬면서 가더라도 백운대까지 가자고 제안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도 없고 한적했다. 쉬어가면 못 갈 것도 없지 싶었다. 기록을 잴 것도 아니고 낙오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페이스 조절을 했다. 너무 페이스 조절을 한 탓인가, 안 보이던 사람들이 밑에서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추월해 가는 이들이 늘어갔다. 길은 더 가파르고 험해졌는데 내 속도는 조금 더 빨라졌다. 덕분에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쉬는 구간이 점점 짧아졌다. 지금 백운대를 오르는 이들 중에 나보다 저질 체력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작한 산행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었다.


여덟 살 학교에 입학한 이후 줄곧 경쟁하며 살았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칭찬은 성적이 오르거나 좋았을 때만 받았다. 개근상이 우등상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던 선생님조차 우등상을 받은 아이를 더 챙기는 듯 했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행동보다 1등을 하는 것이 더 대접을 받았다.


경쟁할 아무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몸은 경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됐으니 30여년의 경쟁생활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아들에게 "공부해라" 대신 "바르게 살아라"고 말만 하지 말고, 조금 더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전필수 팍스TV 차장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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