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취임 열흘 만에 금융권 사상 최대 규모 대출사기 사건에 휘말린 황창규 KT 회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일단 전임 최고경영자 임기 시절 자회사 KT ENS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거리를 두는 모습이지만, 어떻게든 KT로 불똥이 튈 수밖에 없는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대대적 인적쇄신·개편을 단행하고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한 황 회장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욱 조직관리의 고삐를 조일 것으로 전망된다.
7일 KT 관계자와 업계에 따르면 황 회장은 6일 KT ENS에서 발생한 2800억원 규모의 대출사기 사건에 대해 보고받았으나, 긴급 임원회의는 소집하지 않았고 오늘도 별도로 회의가 예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KT 수뇌부는 이석채 전 회장 시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마다 임원회의를 정기적으로 가져 왔으나, 황 회장 취임 직후 본사 임원인사와 함께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교체까지 진행되고 있어 아직 조직 안정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일단 선을 긋는 모양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KT는 전날 사건이 발생한 뒤 추이를 예의 주시하는 한편 사태 파악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사건이 개인차원의 비리행위인지, 아니면 조직 차원의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뒀다. 한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은행권에 관련 서류를 요청했으나 자료 공유를 거부했고, 계속 설득하자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하겠다고 답했지만 가는 와중에 돌연 그마저도 못 보여주겠다며 입장을 바꿨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긴급회의를 열 수도 없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당사자인 KT ENS 측 역시 “아직까지 은행권으로부터 자료를 전달받지 못한 상태이며 이번 사건이 직원 개인차원의 비리행위란 입장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때문에 앞으로 피해액수의 상환을 놓고 은행권과 KT ENS간 소송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출서류에 KT ENS가 날인한 만큼 책임이 있다”는 은행 측 주장과 KT “채권을 지급보증한 적도 없고 서류도 확인 못했다”라는 KT ENS측 입장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김성만 KT ENS 대표가 공석인 만큼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향후 사태 수습에는 KT 본사가 어떻게든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번 사건이 지난 2008년부터 5년간 100여 차례에 걸쳐 물밑에서 벌어졌던 일인 만큼 새로 출범한 황 회장 체제에 미칠 영향은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개인차원의 비리로 결론나더라도 그간 KT 계열사의 누적된 병폐가 드러난 것인 만큼, 황 회장은 이를 계기로 내부 통제 강도를 높이고 준법·윤리경영 기조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KT 관계자는 “황 회장도 이번 사건에 대해 당연히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조치는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통신사의 자회사 관리 실태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산업은 특성상 단말기와 네트워크 장비 등 다양한 협력사들과 여러 단계에 걸쳐 협력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슷한 사고가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관리 시스템의 고도화보다는 근본적인 윤리경영 체계나 관리감독 수준이 관건“이라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스템을 재점검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식 기자 gra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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