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 이상 고액전세 대출 금리 두 배 가까이 뛸 듯
고액전세 매물 줄고 매매·월세 전환 기대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 #서울 반포동 한 아파트(전용 59㎡)에 7억2000만원을 주고 전세를 사는 김형기(가명)씨는 오는 5월 재계약을 앞두고 보증금을 빼 집을 살지 보증부월세로 전환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당초 전세 자금 대출을 추가로 받아 전세보증금 상승분을 충당하려 했지만 6억원 이상 고액전세는 금리가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6억원 이상 고액전세의 대출 규제 강화에 나서면서 부동산 거래시장에 활력이 생길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셋값 상승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액전세입자들의 대출이 제한돼 매매 또는 월세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전세보증금 6억원이 넘는 전세 주택의 경우 주택금융공사의 보증서 발급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마련해 이달 말 발표할 방침이다. 또 보증금 4억~6억원 전세 주택의 경우도 전세보증 한도를 기존 90%에서 80%로 낮출 전망이다.
은행권 전세 대출은 '담보물'이 없는 신용 대출로 통상 연금리가 7~8% 이상이다. 하지만 공기업인 주택금융공사가 보증서를 발급해 주기 때문에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세 대출 금리는 3.8~4.4% 수준으로 낮게 형성돼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고액전세입자들의 전세대출까지 보증을 서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고액전세 대출 금리가 두 배 가까이 뛰면서 고액전세 물건이 상당부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6억원 이상 전세주택은 9만6700여가구(연립·다세대주택 제외)에 이른다. 이 가운데 98%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고액전세 대출규제를 강화한 것은 집을 장만할 정도로 자금이 충분하면서도 전세를 통해 보유세 부담을 회피, 고가 주택의 좋은 품질과 생활환경을 누리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굳이 보유세를 부담해야 하는 유주택자가 되려 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내에만 존재하는 전세 제도의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에 고액전세에 대해 재산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등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일부 자산가들이 고액전세를 불법 증여의 수단으로 악용하면서 지난해에는 국세청이 10억원 이상 고액전세에 대한 자금 출처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현재 주택을 매매할 때는 자금출처를 증빙해야 하지만 전세의 경우는 그런 의무가 없다.
전문가들은 고액전세에 대한 대출규제가 강화될 경우 최근 부동산시장의 추세인 월세전환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부는 지역을 이동해 가격이 맞는 주택 매매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액전세는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높고 자금 출처에 대한 논란이 많아 여러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가 고액전세에까지 보증을 서는 건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고액전세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월세전환 등 시장 변화로 인해 민간임대시장 활성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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