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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지천명을 앞두고 퇴계는 지쳐있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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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2) - 퇴계의 사랑, 두향


[千日野話]지천명을 앞두고 퇴계는 지쳐있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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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에피소드 외에 퇴계가 어린 백사 이항복에게 남녀 성기에 관한 설명을 해주었다는 스토리도 떠돈다. 이런 얘기들은 진위(眞僞)를 따질 필요조차 없는 맹랑한 객담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쓸모없는 얘기는 아니다. 여기에는 일관된 주제 같은 것이 있다. 학문과 예의의 문제에 엄격했던 도학자 퇴계가 성(性)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유연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대 엄숙주의의 '아이콘'이었던 그를 빌려, 성 모럴의 현실적인 논리를 보강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가 진짜 낮 다르고 밤 다르다고 할 만큼 또 다른 열정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은, 지금으로서는 흠이기는커녕 오히려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다. 스무 살 무렵에 주역에 너무 심취하여 몸이 바싹 마르고 골골하는 체력이었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굳이 성욕까지 골골했으리라는 것은 성급한 예단이다. 그가 학문에 대해 보여준 뜨거운 집중력과 사유의 집요함, 그리고 매화를 향한 사무치는 열애를 볼 때 정력적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건강한 밤퇴계'가 매화 이데올로기의 화신인 두향이라는 여인을 만나 완벽한 지적ㆍ정신적 결합을 이뤄냈다고 믿고 싶다.


1548년, 48세의 퇴계는 지쳐 있었다. 단양군수로 부임했던 것은 도피와도 같은 선택이었다. 3년 전에 일어난 을사사화 이후 닥쳐오는 살기(殺氣)를 느꼈다. 낙향했다가 홍문관 응교로 귀경한 그는 청송부사로 보내 달라고 임금에게 청했다. 그러다가 단양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그는 두 아내와 사별했다. 첫 부인 허씨는 아들 둘을 낳고 퇴계 나이 27세 때 병으로 숨을 거뒀다. 3년상이 끝난 뒤 맞은 둘째 부인 권씨. 그녀는 사화(士禍)로 충격을 받은 유학자 집안의 딸로서 실성(失性)한 기운이 있었다. 퇴계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내를 16년간 데리고 살았다. 퇴계 나이 46세 때인 1546년 그녀마저 돌아갔다. 그런 가운데 가뭄으로 굶는 사람이 들끓는 땅인 단양으로 부임한 것이다. 도착한 다음 달인 2월에 둘째 아들 이채가 죽는다. 견디기 어려울 만큼 뒤숭숭한 시절이었다. 그 무렵 시골의 관기(官妓)로 절을 올리는 두향을 만난 것이다. 안팎이 모두 혼란스럽고 힘겨운 중년의 학자에게 이 기생은 무엇이었을까.

두향에 대해선 특별한 기록이 없다. 그녀의 무덤에 관한 시가 두어 편 있었는데 '기생열전'을 쓰던 정비석씨가 그 위치를 궁금해 하던 중 국문학자 이가원씨의 도움을 받아 강선대(降仙臺) 부근에서 무덤을 찾아 복원해놓은 것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팩트의 거의 전부다. 두향에 관한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 대부분이고 단양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퇴계 집안의 가전담(家傳談)이 빈약하게 띄엄띄엄 끼어 있을 뿐이다. 두향의 출신이나 집안에 대해선 알려진 게 없다. '퇴계 선생 연표'를 꼼꼼히 정리해낸 정석태 부산대 교수는 조선 말까지 이산해의 집안에서 두향의 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한다. 이산해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사람으로 부친은 이지번이다. 이지번은 1556년 퇴계의 권유로 단양 구담봉 밑에 '신선'처럼 은거했던 사람이다. '토정비결'로 알려진 이지함의 형이기도 하다. 왜 이 집안에서 두향의 제사를 지냈을까. 이산해가 퇴계의 제자인지라, 스승을 기리는 뜻에서 기생에게 예를 표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양반 가문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보다는 이산해의 집안과 두향이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두향의 어머니가 기생 출신의 부실(副室)로 반가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이런 고리와 스승의 인연이 함께 엮이면 묘소를 챙길 만큼 의미가 커질 수도 있지 않을까? 두향의 빼어난 학식과 품성이 배태된 것 또한 당대 그 정도의 가문 출신이라면 설명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두향과 퇴계의 매화는 그냥 동일한 취향이 아니라 유교 사회의 핵심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깊이 있는 공감대다. 두향의 어머니는 사군자 중 매화를 치고, 또 고매(古梅)를 사랑하여 분화를 정성 들여 가꿔내는 모범을 딸에게 보였을 것이다. 또 두향은 당대 고금의 시인묵객이 남겨 놓은 매화 시를 읽으며 감성을 키웠으리라.


그 해 정월 아침 나절,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퇴계는 공자의 삶을 떠올리며 그에게 주어진 하늘의 명령(天命)을 생각하며 동헌에 앉아 있었다. 날은 춥고 흐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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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남녀상열은 자연의 이치 아니더냐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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