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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남녀상열은 자연의 이치 아니더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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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1)-퇴계의 사랑, 두향

[千日野話]남녀상열은 자연의 이치 아니더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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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1000원권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1501-1570)의 얼굴 왼쪽에는 노매(老梅) 가지 하나가 성균관의 명륜당 건물 위에 20여 송이의 매화를 드리웠다. 왜 퇴계 옆에 매화를 가득 그려놓았을까? 결코 그냥 우연한 장식이 아니다. 매화는 바로 퇴계 정신의 개화(開花)이며, 그가 완성한 이 땅의 주자학을 함축하는 생명력(추위를 밀어내며 피어나는 꽃)이다.


퇴계는 스스로 '혹애매(惑愛梅ㆍ매화에 푹 빠졌다)'라고 말할 정도의 매화 마니아였다. 저 '혹애'라는 말에는 남녀 간의 격렬하고 맹목적인 사랑의 이미지가 숨어 있다.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것 혹은 사랑에 눈멀었다는 것, 그것이 '혹애'가 아닌가. 퇴계와 매화는 학문적 상징과 도락적인 취향이 기묘하게 결합하면서 신드롬을 이뤄온 조선 선비의 매벽(梅癖ㆍ매화 탐닉)의 한 정점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매화 너머에는 진짜 아무도 없었을까? 세상은 이런 미주알고주알 스토리를 흥미 있어 한다. 정말 퇴계는 매화만 죽도록 사랑했기에, 매화 저 너머에 있는 여인에게는 한눈을 팔지 않았을까? 이런 관심과 수다들이 '두향(杜香)'이라는 불세출의 해어화(解語花ㆍ말하는 꽃)를 등장시켰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향은 작가 정비석이 슬쩍 비친 대로 '두보의 향기'를 떠올리게 한다. 두보가 누구인가. 조선의 유학자들이 왜 '두시언해(杜詩諺解ㆍ두보의 시를 한글로 정리한 책)'를 펴냈으랴.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실천주의 유학의 내재율을 구구절절이 시 속에 담아낸 시인성인(詩人聖人)이 바로 두보다. 두보의 향기는 바로 유학의 향기다. 산이 추워지면 매화 피울 마음을 낸다는 통찰 또한 두보의 것이니, 그의 향기는 바로 매화의 향기다. 두보에서 주자, 퇴계로 이어지는 매화의 고리가 바로 두향(杜香)이란 얘기다.

퇴계의 매화 사랑은, 퇴계와 두향의 연애로 가지를 친다. 이것은 조선의 정신사(史)에 피어난 기막힌 로망스다. 우선 이 연애를 성립시키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있다. 저토록 고매한 인격과 학문의 경지를 지닌 퇴계 선생을 굳이 연애전선에 투입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연애라는 것이 아무리 품격 높은 하이킥을 해도, 육체적인 문제나 욕망의 문제를 건너뛰기가 곤란한 일인지라, 자칫 그분을 출연시켰다가 망신살을 상봉하기 십상이 아니던가. 1541년 퇴계는 관서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평양에 머물렀다. 그때 평안감사가 그에게 기생 접대를 하려고 했으나 퇴계는 단호히 거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내용을 보면, 퇴계는 여색에 관해 안팎으로 엄격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스타일수록 '안티팬'이 들끓 듯, 대스승 퇴계에게도 비슷한 '댓글'이 없지 않다는 점을 아시는지. 이를테면 조선의 개그판에 돌았던 '낮퇴계 밤퇴계' 같은 얘기 말이다. 몇 가지 버전이 있다.


#버전1= 마을 빨래터에서 아낙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그때 퇴계 선생 부인이 빨랫감을 안고 나타났다. (퇴계는 판서까지 하신 분인데 부인이 웬 빨래? 개그는 개그일 뿐이다.) 아낙 중의 하나가 이렇게 묻는다. "부인께선 요즘 무슨 재미로 사세요? 사람 사는 재미는 애 낳고 키우고 알콩달콩 싸우며 사는 것인데…. 그런데 퇴계 선생과는 한 이불을 덮고 주무시기는 하는 거예요?" 부인은 말 없이 빨랫방망이만 툭툭 두둘긴다. 곁에 있던 다른 아낙이 거든다. "덕이 높으면 뭘 하나? 학문이 높으면 뭘 하나? 제자가 많으면 뭘 하나? 사람 사는 재미는 그저… 그게 있어야 재미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퇴계 부인은 말 없이 빨래를 정리한 뒤 일어선다. 그러면서 아낙들을 돌아보며 하는 말. "밤에도 퇴곈 줄 알어?"


#버전2= 21세 때 결혼한 첫 부인 김해 허씨는 고향이 영주다. 퇴계가 워낙 반듯한 선비인지라 결혼 첫날밤을 지내고 난 딸에게 걱정스럽게 허씨의 어머니가 물었다. "얘야. 신랑이 사랑을 할 줄은 알더냐?" 허씨는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말도 마이소. 사람이 아닙디더."


#버전3= '낮퇴계 밤퇴계'라는 소문을 들은 퇴계의 제자들이 투덜거렸다. "세상에, 스승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 우리 보고는 근신(勤愼)과 절제를 그토록 당부하시면서 말이야." "그러게 말야. 율곡 선생은 진짜 여자라고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데, 우리도 이 참에 과외 바꿔야 하나?" 이렇게 수군거리고 있을 때 스승 퇴계가 다가왔다. "스승님, 우리는 당혹스럽사옵니다." 이러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때 퇴계가 이렇게 말했다. "밤에 남녀가 상열에 임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우주의 큰 도인데 그것을 굳이 피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도다. 만약에 율곡이 그런 주장을 했다면 필시 자식 복이 없을 것이다." <계속>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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