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千日野話]남녀상열은 자연의 이치 아니더냐(1)

시계아이콘02분 06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빈섬의 스토리텔링(1)-퇴계의 사랑, 두향

[千日野話]남녀상열은 자연의 이치 아니더냐(1)
AD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1000원권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1501-1570)의 얼굴 왼쪽에는 노매(老梅) 가지 하나가 성균관의 명륜당 건물 위에 20여 송이의 매화를 드리웠다. 왜 퇴계 옆에 매화를 가득 그려놓았을까? 결코 그냥 우연한 장식이 아니다. 매화는 바로 퇴계 정신의 개화(開花)이며, 그가 완성한 이 땅의 주자학을 함축하는 생명력(추위를 밀어내며 피어나는 꽃)이다.


퇴계는 스스로 '혹애매(惑愛梅ㆍ매화에 푹 빠졌다)'라고 말할 정도의 매화 마니아였다. 저 '혹애'라는 말에는 남녀 간의 격렬하고 맹목적인 사랑의 이미지가 숨어 있다.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것 혹은 사랑에 눈멀었다는 것, 그것이 '혹애'가 아닌가. 퇴계와 매화는 학문적 상징과 도락적인 취향이 기묘하게 결합하면서 신드롬을 이뤄온 조선 선비의 매벽(梅癖ㆍ매화 탐닉)의 한 정점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매화 너머에는 진짜 아무도 없었을까? 세상은 이런 미주알고주알 스토리를 흥미 있어 한다. 정말 퇴계는 매화만 죽도록 사랑했기에, 매화 저 너머에 있는 여인에게는 한눈을 팔지 않았을까? 이런 관심과 수다들이 '두향(杜香)'이라는 불세출의 해어화(解語花ㆍ말하는 꽃)를 등장시켰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향은 작가 정비석이 슬쩍 비친 대로 '두보의 향기'를 떠올리게 한다. 두보가 누구인가. 조선의 유학자들이 왜 '두시언해(杜詩諺解ㆍ두보의 시를 한글로 정리한 책)'를 펴냈으랴.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실천주의 유학의 내재율을 구구절절이 시 속에 담아낸 시인성인(詩人聖人)이 바로 두보다. 두보의 향기는 바로 유학의 향기다. 산이 추워지면 매화 피울 마음을 낸다는 통찰 또한 두보의 것이니, 그의 향기는 바로 매화의 향기다. 두보에서 주자, 퇴계로 이어지는 매화의 고리가 바로 두향(杜香)이란 얘기다.

퇴계의 매화 사랑은, 퇴계와 두향의 연애로 가지를 친다. 이것은 조선의 정신사(史)에 피어난 기막힌 로망스다. 우선 이 연애를 성립시키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있다. 저토록 고매한 인격과 학문의 경지를 지닌 퇴계 선생을 굳이 연애전선에 투입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연애라는 것이 아무리 품격 높은 하이킥을 해도, 육체적인 문제나 욕망의 문제를 건너뛰기가 곤란한 일인지라, 자칫 그분을 출연시켰다가 망신살을 상봉하기 십상이 아니던가. 1541년 퇴계는 관서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평양에 머물렀다. 그때 평안감사가 그에게 기생 접대를 하려고 했으나 퇴계는 단호히 거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내용을 보면, 퇴계는 여색에 관해 안팎으로 엄격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스타일수록 '안티팬'이 들끓 듯, 대스승 퇴계에게도 비슷한 '댓글'이 없지 않다는 점을 아시는지. 이를테면 조선의 개그판에 돌았던 '낮퇴계 밤퇴계' 같은 얘기 말이다. 몇 가지 버전이 있다.


#버전1= 마을 빨래터에서 아낙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그때 퇴계 선생 부인이 빨랫감을 안고 나타났다. (퇴계는 판서까지 하신 분인데 부인이 웬 빨래? 개그는 개그일 뿐이다.) 아낙 중의 하나가 이렇게 묻는다. "부인께선 요즘 무슨 재미로 사세요? 사람 사는 재미는 애 낳고 키우고 알콩달콩 싸우며 사는 것인데…. 그런데 퇴계 선생과는 한 이불을 덮고 주무시기는 하는 거예요?" 부인은 말 없이 빨랫방망이만 툭툭 두둘긴다. 곁에 있던 다른 아낙이 거든다. "덕이 높으면 뭘 하나? 학문이 높으면 뭘 하나? 제자가 많으면 뭘 하나? 사람 사는 재미는 그저… 그게 있어야 재미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퇴계 부인은 말 없이 빨래를 정리한 뒤 일어선다. 그러면서 아낙들을 돌아보며 하는 말. "밤에도 퇴곈 줄 알어?"


#버전2= 21세 때 결혼한 첫 부인 김해 허씨는 고향이 영주다. 퇴계가 워낙 반듯한 선비인지라 결혼 첫날밤을 지내고 난 딸에게 걱정스럽게 허씨의 어머니가 물었다. "얘야. 신랑이 사랑을 할 줄은 알더냐?" 허씨는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말도 마이소. 사람이 아닙디더."


#버전3= '낮퇴계 밤퇴계'라는 소문을 들은 퇴계의 제자들이 투덜거렸다. "세상에, 스승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 우리 보고는 근신(勤愼)과 절제를 그토록 당부하시면서 말이야." "그러게 말야. 율곡 선생은 진짜 여자라고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데, 우리도 이 참에 과외 바꿔야 하나?" 이렇게 수군거리고 있을 때 스승 퇴계가 다가왔다. "스승님, 우리는 당혹스럽사옵니다." 이러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때 퇴계가 이렇게 말했다. "밤에 남녀가 상열에 임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우주의 큰 도인데 그것을 굳이 피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도다. 만약에 율곡이 그런 주장을 했다면 필시 자식 복이 없을 것이다." <계속>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