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의 '사람읽기' 인터뷰-책읽기를 시정목표로 내건 군포시장 김윤주
윤승용 논설고문(얼굴)의 '리더의 서재에서'를 시작합니다. CEO와 경제지식인들의 지적보고(知的寶庫)를 탐방해 깊이있는 성찰의 결과들을 함께 음미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윤 고문은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국방홍보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으며 저서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등을 출간했습니다.
경북 예천의 산골마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은 7남매의 맏이인데도 가정형편이 너무도 어려워 중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이웃에 사는 외삼촌의 조그만 책방에서 일손을 도우며 서가의 책을 모조리 읽어 버리는 방식으로 배움에의 한을 삭였다. 제대로 된 독서프로그램도 없이 서가의 한켠에서부터 시작해 책방의 모든 책을 독파하면서 소년은 인생과 세상의 창문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정직하고 근면하면, 그리고 책을 가까이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노동운동가를 거쳐 인구 29만명의 군포시장에 오른 그는 이제 '독서보급운동'을 최우선의 시정목표로 내세우며 '책 읽는 군포'를 가꾸는 데 여념이 없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결코 췌언이 아닌 증거가 바로 나"라며 시정에 바쁜 김윤주 군포시장을, 독서관련 사업부서에 일부 공간을 내주느라 매우 비좁아진 집무실에서 만났다.
집무실 줄여 독서사업부 만들고 신생아때부터 그림책 읽어주고 市 선정한 책은 시민과 돌려보기 독서는 자신과 세상을 바꿉니다
-'책 읽는 군포'를 시정의 으뜸 목표로 정했는데 그 연유가 궁금합니다.
▲ 40년 이상을 군포시에서 살아왔지만 외지인에게 딱히 군포시를 내세울 게 없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진 것이 청소년과 교육문제였고, 민선 2기 때부터 시작한 도시 정체성의 고민에 대한 해법이 '책'입니다.
스마트폰 등 문명의 이기 덕에 의사소통을 위해 기울여야 할 시간과 노력은 감소했지만, 타인과 소통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소통과 공감의 상실은 학교폭력이나 가정불화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키는데 책 읽기는 사회문제를 미리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소통하는 문화는 우리에게 대화와 사람 냄새를 돌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책 읽는 군포'를 위해 지금까지 해온 정책은 어떤 것들인지요.
▲ '한 도시 한 책 읽기', '거실을 서재로', '위드 북 스타트(With Book Start)' 그리고 '책 축제' 등입니다. 3년째 진행된 '한 도시 한 책 읽기' 사업은 군포에 사는 누구나, 어디서든 이웃이나 친구를 만나도 허물없이 친분을 나눌 수 있게 해줍니다. 같은 책을 읽은 공통의 경험을 나누며, 친근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책이 시민과 시민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거실을 서재로' 사업은 가정집 거실의 TV를 없애고 서재를 꾸미자는 운동입니다. 공동 공간인 거실에서 가족이 함께 책을 읽으며, 잃어가는 대화의 불씨를 살려서 정을 두텁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위드 북 스타트' 사업은 신생아에게 그림책을 선물하는 일입니다. 군포의 아이들이 책과 함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과 친하게 지내서 평생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지닐 수 있도록 돕자는 것입니다. 또한 매년 '군포의 책'을 선정해서 릴레이식으로 돌려 읽는 사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실제 군포시는 올해의 경우 소설가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군포의 책으로 선정, 3000여권을 구입해 거의 모든 시민이 돌려 읽는 중이다.)
-'책 읽는 군포실'이라는 과장급 조직까지 있던데요.
▲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한 다른 많은 도시에서의 책 읽기 사업은 도서관 단위 또는 팀 단위의 업무이지만 좀 더 중점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제 집무실 바로 옆에 '책 읽는 군포실'을 배치했는데 잘했다고 봅니다. 내년에는 '책 읽는 군포실' 주관으로 병원이나 은행, 미용실 등에서도 언제든 편하게 책 읽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마음만 먹으면 책이 손에 닿을 수 있는, 도시 전체가 도서관인 군포를 만들려 합니다. 그 결과 요즘 "책 하면 군포! 군포 하면 책!"이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어 뿌듯합니다.
-독서행정에 주력하다 보니 후생복지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은 없습니까.
▲ 처음에는 "책 읽기는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시가 시책사업으로 할 일입니까"라는 반응이 많았지요. 먹고 사는 문제는 등한시하고 책만 보라고 한다든가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는 일을 해서 지지도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줄을 이었습니다. 그래도 책으로 밝아질 도시의 미래를 상상하며 뚝심 있게 전진했고, 사업 시행 3년이 지난 지금은 시민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선심성 사업이 아닌 시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시책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뜻을 함께해준 동료 공무원들과 이 지역 거주 문인, 문학 관련 동호회원, 학생 등 모든 시민이 함께해준 것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독서 골든벨 행사는 무언가요.
▲ 독서의 계절 가을이 오면 군포에서는 '책 축제' 외에도 4번의 독서 골든벨이 열려 온 도시에 책 읽기 열풍이 붑니다. 지역 문인협회와 협력해서 개최하는 독서 골든벨은 어르신, 공무원, 공익근무요원을 대상으로 한 것과 11개 동별 대항 형식의 4종류입니다. 이 중 공무원들은 '2013 군포의 책'과 후보 도서 5권에 들었던 책들 그리고 청렴도서인 <대한민국 목민심서>에서 출제된 문제를 풀며 독서능력과 청렴지수를 한번에 높이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군포시중앙도서관이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3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에서 정부 표창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창작활동 지원을 위해 별도로 있던 관장실을 개축해 문예창작실을 마련해 지역 문인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독서를 장려하는 '책 읽는 군포'로서의 위상에 좋은 책이 집필되는 창작도시로의 발전을 견인했다는 점과 '한 도시 한 책 읽기 사업'의 정착을 위한 군포의 책 독서토론대회, 독서동아리 활성화 지원, 계층별 맞춤 독서문화 프로그램 개설 등 대중독서운동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사실 등이 높게 평가받은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발족한 '독서르네상스운동'은 무엇하는 단체인가요.
▲ '독서르네상스운동'은 김홍신 작가와 박상증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조남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이 상임대표로 있는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범국민 책 읽기 장려사업 및 저술, 출판, 도서유통 등 지식창조산업 활성화를 위해 전국을 무대로 독서진흥정책 연구, 독서인프라 확대, 독서문화 홍보 캠페인 등을 전개할 뿐만 아니라 북한에 도서 보내기 운동과 도서관 건립 지원 사업까지 추진할 예정입니다. 저도 공동대표로 참여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어릴 적 굉장히 어렵게 자랐다고 하던데요. 책을 가까이하게 된 동기는.
▲ 제가 기억하는 시골 마을 풍경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6ㆍ25전쟁 직후여서 참 어려운 시절이었죠. 7남매의 장남인 저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는데, 진학한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사춘기여서 그랬는지 험한 생각도 하고 별별 망상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진학 포기가 앎에 대한 저의 집념마저 꺾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면서도 매일 밤 동네 외삼촌 책방을 찾아가 책을 읽곤 했었는데, 그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책은 제게 밤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삶을 밝혀주는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책과 도서관은 꿈이자 희망, 지혜이자 힘이며 미래의 길잡이입니다.
-독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밥은 우리네 삶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몸과 마음 모두에 힘을 주는 영양소입니다. 저는 독서도 우리에게 밥과 같은 힘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고, 인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듯 독서를 한다면 세상은 더 살 만해질 것이고, 따뜻한 사람 냄새가 더 많이 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에서는 '밥이 되는 인문학' 강연을 매월 개최하고, 시청 현관에는 '밥상머리 북 카페'를 운영하는 등 많은 시민에게 밥심 같은 독서의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윤승용 논설위원 yoon6733@
◆책갈피-책속의 추천 명구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本務)요 모든 선의 근원이요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 수 없다. 청렴이야말로 천하의 큰 장사다 그래서 포부가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고자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讀未見書(독미견서) 如得良友(여득양우)讀已見書(독이견서) 如逢故人(여봉고인)(아직 보지 않은 책을 읽으면 좋은 친구를 얻은 것과 같고, 이미 본 책을 읽으면 옛 벗을 만난 것과 같다) -중국 청나라 시인 금영(金纓)의 <격언련벽(格言聯壁)>에서
◆읽어보니, 좋던데요- 김 군포시장의 추천도서
1. 그림문답<이종수/생각정원>
▲조선시대의 그림을 통해 당시의 역사와 문화적 상황을 보여주는 이 책은 그림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그림에 등장하는 단서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만나고 조선의 선비들의 삶과 만날 수 있다.
2.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고미숙 저/북드라망>
▲조선시대의 큰 별 다산과 연암의 인물과 사상에 대해 '문체반정'과 '서학'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새로운 평전. 역사와 문학, 철학 등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기질을 독특하게 분석하며 18세기 조선의 지성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3.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설흔/창비>
▲조선후기 문인인 이옥과 김려의 우정과 삶의 굴곡을 깊이 있고 감동을 주는 글솜씨로 풀어나가고 있다. 인생과 사람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로 인도하는 이 책은 간결한 문장과 뛰어난 인물묘사를 통해 삶의 올바른 가치관에 대해 생각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의 여지를 주는 작품이다.
4. 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소나무>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 어려운 말을 쓰지 않으면서 인문학에 대해 편안하게 안내하는 철학자 최진석 교수의 책. 읽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인문학의 숲을 거닐며 마음이 맑게 치유되는 느낌을 얻게 된다. 잘 숙성된 저자의 인문학적 깊이가 쉽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우리를 안내한다.
5. 책은 도끼다 <박웅현/북하우스>
▲인문학적 깊이와 감성을 지닌 광고를 만들어 온 저자에게 있어 아이디어의 원천은 바로 '책'이었다. 저자는 책을 읽되 사고와 태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책을 읽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통해 '보는 눈'과 '사고의 확장'을 지향하는 것이 곧 인문학적 책읽기라고 말하고 있다.
◆김윤주 군포시장 약력
▲1948년 경북 예천 출생
▲예천 용문초등학교
▲범양냉방 노동조합 위원장(4선)
▲한국노총 경기중부지역지부 의장
▲㈔동북아평화연대 자문위원
▲제10~11대 군포시장
▲제13대(민선 5기) 군포시장(현)
윤승용 논설위원 yoon673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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