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재정위기에 허덕이던 서유럽 국가들이 모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의 불씨가 보이고 있지만 동유럽 상황은 되레 악화하고 있다.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동유럽 국가들의 시장경제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1991년 출범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20일(현지시간) 발간한 연례 '전환보고서'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동유럽 개혁에 아무 성과가 없었다고 진단했다.
사회주의 맹주였던 러시아는 물론 주변국 대다수가 여전히 성장하고 있지만 이곳저곳에서 문제들이 발견되고 있다. 서방과 격차가 줄기는커녕 개방·민주화 이전 수준으로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1994년 이래 처음으로 개혁이 진전된 나라보다 후퇴한 나라가 많았다. 헝가리는 에너지 부문에서 지나친 정부의 간섭으로 가격자율화 점수가 세 단계 하락했다. 슬로바키아는 두 계단 굴러떨어진 것으로 평가됐다.
이번 보고서에서 동유럽과 서유럽 국민 사이의 삶의 질이 좁혀지지 않은 것은 개혁 부진 탓인 것으로 지적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혁과 구조조정 노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동유럽이 경기침체와 개혁부진이라는 두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EBRD의 에릭 베르글뢰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도 개혁이 중단되고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동유럽에 제대로 된 경제개혁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개혁의 부진은 성장의 후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EBRD는 최근 내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30개국의 경제성장률을 2.8%로 예상했다. 올해는 금융위기 여파가 거셌던 2009년만 제외하면 지난 15년 이래 가장 낮은 2%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앙아시아와 동유럽의 잠재 성장률이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며 우려했다. IMF가 추정한 현지의 2013~2017년 잠재 성장률은 2.35%다. 이는 2003~2007년 5.2%에 크게 못 미친다.
이는 서방 은행들의 사정이 어려워져 대출 여력과 필요한 자금도 줄다 보니 투자가 다시 축소되는 악순환 탓이다.
EBRD는 “이대로라면 삶의 질에서 동유럽과 서유럽 주민들의 격차를 줄이는 게 요원할 듯하다”고 내다봤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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