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황후가 된 고려여인 기순녀③끝
'신돈'의 김혜리, '기황후'의 하지원은 그녀를 닮지 않았다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내가 생각하기엔, 고려 여인 기순녀는 드라마 '신돈'(2005년 MBC)에서 나온 기황후 역의 김혜리나 '기황후'(2013년 MBC)의 하지원을 닮지 않았다. 원나라의 역사서('원사' 후비열전)에서 묘사한 그녀의 모습은 '살구 같은 얼굴, 복숭아 같은 뺨, 버들 같은 허리'이다. 미인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살구는 붉은 빛이 감도는 노란 빛의 생기 넘치는 동양 미녀의 얼굴 빛이다. 작고 계란처럼 둥근 모양이며 후덕한 인상이다.
하지원에겐 푸근한 이미지가 부족해 보인다. 복숭아 같은 뺨은 흰빛이 강조된 연다홍빛이다. 수줍음과 청순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매혹적인 풋풋함이다. 복숭아 위의 보송보송한 섬모 또한 그런 인상을 늘려놓는다. 복숭아는 성적인 매력을 담지하고 있기도 하다. 버들 같은 허리는 가늘다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움직임이 유연하다는 뜻도 된다. 곡선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가짐이 곱고 섬약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자아내게 하는 매력이다. 김혜리는 요부의 인상을 강조하고 사악함과 고집을 표현하는 분장으로 등장했다. 또 하지원은 처연한 눈물로 사람들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내면적인 단단함이나 고려인다운 깊은 자긍심을 지닌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기황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해석일 수 있다.
그녀는 고려의 공녀로 원나라에 성적인 노리개로 끌려간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원나라 황제인 순제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저 살구빛과 복숭아빛, 그리고 버들허리의 어리고 여리고 순하고 약한 면모가 아주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질고 부드러워서 사내의 마음을 치유하는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 또한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기순녀는 어떻게 생겼을까. 나는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의 '금과은' 특별전에 전시됐다는 '금동세지보살상'(보물 1047호ㆍ사진)을 주목한다. 금강산 장안사에서 나왔다는 이 보살상은 연꽃 위에 앉아있는 부처의 모습인데 여인의 모습을 빼닮았다.
장안사는 기황후의 원당 사찰이었다. 그녀는 거액의 내탕금을 찬조하여 큰 불사를 일으켰으며 많은 불상을 봉안했다. 이 보살이 기황후를 닮은 것은 우연일까. 얼굴은 살구를 닮아 작고 둥글며, 뺨의 빛깔은 금동을 입었으나 그 수줍은 기색이 복숭아를 느끼게 하며, 영락 장식을 늘어뜨린 허리는 영락없이 버들허리이다. 그녀가 가볍게 물고 있는 미소와 살풋 감은 눈매는 이 여인이 황제를 어떻게 대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어줄 듯 하다.
또 그녀가 신봉했던 라마교의 흔적도 어른거리는 듯하다. 라마교는 티벳불교의 다른 이름이다. 그들은 나라와 불국(佛國, 관음의 정토)을 동일시하며 달라이라마를 관음의 화신이라고 생각한다. 현세와 지금의 삶과 수행을 귀하게 여긴다. 이런 면모들이 권력과 종교를 동일시하는 '신성한 착시'를 불러왔다. 기황후도 권력을 넘어 그런 완전한 무엇에 도달하고 싶지 않았을지.
어느 장인(匠人)이 기황후를 사모하여 장안사의 불상에다 그녀의 미태를 새겨넣었을까.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가르침을 담은 법화경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보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삶을 다시 일으켜 천하의 주인으로 꽃핀 그 놀라운 에너지가 법화경의 묘경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면 가슴이 더 설렐지도 모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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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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