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세미나서 "임대주택 공급 늘어난 것이 수지 악화 원인"…대안 제시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공기업 국고보조비가 85%지만 지방공기업은 50%에 불과하다. LH 수준의 국고 보조가 필요하다." (김성희 SH공사 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해명할건 해명하고 외부의 평가를 받아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모니터링이나 명예이사직을 만들어 의사결정 과정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과감한 조치도 필요하다."(최인욱 좋은예산센터 사무국장)
공기업이 추구해야 할 '공공성'과 부채 감축 요구로 압축되는 '수익성'. SH공사가 처한 딜레마다. 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면서 SH공사의 수지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장기전세주택과 영구임대주택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적자 규모도 불어나고 있다. 임대주택사업이 지속되려면 중앙정부의 국고보조율을 높여 재무건전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8일 오후 SH공사와 서울시립대가 SH공사 본사에서 가진 ‘지방공기업의 혁신과 공공성’ 세미나에서 서울시 채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SH공사의 문제점과 혁신방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SH공사의 부채 급증 원인으로 '임대주택 사업'이 지목됐다. 임대주택 공급 물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수지가 악화됐고 그 배경에는 공공임대 10만호 건설, 장기전세주택 공급이 있다. 김성희 연구원은 "2006년 2%였던 임대주택 물량이 2012년에 8%까지 늘었다"며 "2002년부터 10년간 임대수익은 2배 늘었지만 임대사업 원가가 4.7배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손실률도 급증했다. 매출의 수익성을 판단하는 지표인 매출총이익률이 2005년 -37%였지만 2012년 -180%까지 악화됐다. 2020년까지 20만호를 공급하게 되면 2013년엔 -2200억원인 손실액이 2020년에는 -4750억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원은 "LH와 SH공사의 임대사업수지를 비교해도 SH공사의 손실률이 4배가량 높은데 SH공사의 임대사업 원가가 높고 LH는 분양전환임대물량으로 수선유지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기준 수선유지비는 LH가 11%지만 SH공사는 18%다.
임대사업 원가 현황을 살펴보면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임대사업원가 54%를 감가상각비, 지급이자가 차지했다. 감가상각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기전세주택(시프트)과 국민임대주택의 비율이 2007년 7%이던 것이 2011년에는 57%까지 늘었다. 서민의 주거안정 지원을 위해 시프트 공급을 지속하면서 관리물량이 늘어날수록 감가상각비와 지급이자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주체의 '딜레마'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에 장기공공임대주택의 국비지원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가 공기업인 LH는 국고보조율이 85%인데 비해 SH공사의 국고보조율이 50%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국비사업에서 SH공사의 부담액은 2009년 35억원에서 2011년엔 98억까지 늘었다.
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 학장은 "선진국도 임대주택에 지방정부가 중앙정부가 2대 8의 비율로 지원하는데 SH공사에서 하는 임대주택 사업도 국고보조 비율이 늘어나야 한다"며 "정부에 이 부분을 건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함요상 대구대학교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대표적 공익적인 사업인데 LH와 SH공사가 손익금 처리 규정이 다르다"며 "LH의 경우 공익사업을 통해 발생한 적자는 적자로 보지 않고 발생시 정부가 재정으로 지원하는데 이것을 지방공기업에도 도입해 평가나 운영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방공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점으로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통제, 지역 주민들의 참여 기회가 좁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내부에서 각종 운영지침들이 자율성을 옥죄고 있는데다 공공서비스 수혜자인 지역주민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말로는 공익, 공공성을 운운하는데 경영진단이 경영 부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지역 주민이나 의회가 어떻게 개입할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고 꼬집었다.
함 교수는 "지방공기업은 경영의 전 분야에서 중앙정부의 제도적 통제를 받고 지방자치단체로부터는 예산편성과 조직·인사 관련 승인권을 도구로 통제받고 있다"며 "언론이나 일반 국민들은 ‘신의 직장’ 등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정책적 적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방 공기업 스스로 내적 역량을 강화한다는 전제 하에 경영자율성이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내부통제 시스템과 성과지향적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내부 혁신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지방공기업 내부에서 학습된 무능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함 교수는 "감사원의 지방공기업 감사결과를 살펴보면 무리한 사업추진이나 잘못된 타당성조사, 불필요한 시설 설계 등 민간기업이라면 하지 않았을 사업들이 발견됐다"며 "예산이나 인력, 지자체 등 사회적 관계로 인해 타협적 차원에서 행해지거나 지자체 공무원들을 닮아가는 거울효과를 보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공기업 혁신이 쉽지 않다는 내부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종수 SH공사 사장은 "박원순 시장이 SH공사에 주신 두 임무가 채무감축, 임대주택 8만호 공급이었는데 기업성과 공공성을 어떻게 잘 조화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며 "공기업 혁신이 참 어렵다는 걸 많이 실감했지만 올해와 내년에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공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공공성과 외부의 평가기준인 수익성을 상충하고 있는 것도 SH공사가 당면한 큰 문제점이다. 이현우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기업의 성격은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시대적 상황은 수익성을 요구한다"며 "공기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공공성 지표 측면이 좀더 경영평가에 반영될 수 있게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정석 SH공사 도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부채 규모와 하루 이자비용 등을 언급하며 SH공사가 비효율의 극치나 문제적 집단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며 "장기임대주택의 보증금으로 인한 부채 등 갖고 싶지 않아도 떠맡아야 하는 부채가 있는데 공사의 재정건전성을 부채비율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며 반론을 폈다. 이어 "공공임대 한 채 짓는데 7000만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건설, 매입, 차입 다 포함해 14만채 공급했다"며 "유지관리비용까지 감안할 때 현재 상태를 도덕적 해이로만 설명할 수 있느냐"고 토로했다.
한병용 서울시 임대주택과장은 "8만호 건설 자체가 많은 재원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빚 져야 하는 상황이고 채무도 감축해야 하는데도 상당한 성과를 이뤘다고 본다"며 "서울시의 지시도 수용할 수밖에 없어 부채가 증가된 점을 인정하고 내부적으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SH공사가 분양보다는 임대주택, 도시재생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 과장은 "서울시내에서 개발 가능한 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SH공사가 분양사업을 하기에도 어려운만큼 민간업체보다 우위에 있는 부분(임대주택, 도시재생)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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