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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고맙다'는 말은 왜 생겼을까

시계아이콘01분 47초 소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잠깐 있는 존재이다. 작가 이윤기 선생의 호(號)를 빌려 말하면 '지나가는 사람(過人)'이다. 그래서 우린 덧없고 기약없는 '삶의 짧은 동안'에 온 정신과 사랑을 기울이며 지낸다. 문득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내가 살고있는 공간이 여기가 다가 아니라 생각하기도 어려운 먼 곳까지 퍼져있구나 하는 기분을 느낀다. 이른바 우주감각이다. 또, 낱말 하나를 들여다 보면, 수천년 수백년 우리가 태어나기 오래 전부터 이것이 입술에 얹혀졌던 시간이 언뜻 다가온다. 목숨은 짧지만 언어는 그보다 훨씬 오래 살고 느리게 변화한다는 사실, 이것이 낱말을 대할 때 가끔 느끼는 경건함 같은 것의 정체이다.


'고맙다'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15세기에 '고마'라는 명사가 있었다고 한다. 존경이라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여기서 '하다'가 붙어 '존경하다' '우러르다'라는 뜻의 '고마하다'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러나 '고마하다'라는 말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 16세기에는 '고마오다'라는 말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지금의 '고맙다'와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 '고마오다'라는 말을 누군가가 오분석하면서 '고맙+온'으로 풀어서, '고맙다'라는 형태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에는 이 말을 '곰압다'로 다시 잘못 풀어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1912년 '만인계'나 1922년 나도향의 '환희'이다.

'고맙다'는 '고마하다'와 '고마오다'라는 옛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고마하다'는 다른 의미의 말이고, '고마오다'는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감사하다'는 말은 한자에서 온 것인데, 16세기부터 '감샤하다'는 표현으로 쓰였다. 그러니까 16세기에는 '고마오다'와 '감샤하다'가 함께 쓰인 셈이다. 지금 우리가 '고맙다'와 '감사하다'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거의 같은 뜻이지만, '고맙다'가 더 쓰이는 폭이 넓다. '감사하다'는 윗사람에게는 쓰지만 아랫사람에게 쓰는 것은 어색한 느낌이 있다. '고맙다'는 말은 아래나 위나 다 쓸 수 있다.


한자도 아닌 '고마오다'는 왜 16세기에 나타났을까. 한글 기록이 더 풍성해지는 것과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조선의 내면이 무르익는 시기인 이 무렵의 인간관계의 성숙을 떠올려본다. 조선은 14세기 말에 세워져, 15세기 내내 쿠데타로 시작한 왕국을 합리화하고 통치의 안정을 꾀하느라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성기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라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경국대전이 완성되고 조선의 기틀이 갖추어지는 때에 이르러, '고마움'이라는 감정이 구체적으로 표현될 필요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인가를 고마워하고 누군가를 고마워하는 일은, 마음의 여유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세기는 조선이 비로소 고려 콤플렉스를 씻고, 스스로의 주체성과 자부심을 갖추면서, 고마움을 돌아볼 수 있는 여력이 생긴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때까지 쓰이던 비슷한 표현을 찾으려 애썼을 것이다. '고마'라는 말이 존경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어떤 상대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고마하다'에서 '고마오다'라는 말을 변주해냈는지도 모른다. 고마움이란 상대에 대해 고개를 숙이는 일이기도 하니, 남을 높이고 스스로를 낮추는 측면이 있으니까 말이다.


고마움이 유통되는 세상은, 인간 관계의 기틀이 의미있게 유지되고 있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일도 고마움이 바탕이 되면 깊어질 수밖에 없고, 신뢰하는 일도 그렇고, 협업하는 일도 그렇고, 의지하는 일 또한 그렇다. 고마움의 바탕이 사라지면 사랑도 신뢰도 협업도 의지도 부실하고 황폐해지기 십상이다. 지금 우리들은 입버릇처럼 고마움을 꺼내지만, 진실로 그 고마움이 마음에서 우러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숨쉬고 있는 세상이 살 만한 곳인가 아닌가를 변별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마움은 고마움을 낳는다. 내가 고마운 사람이어야 고마워할 일이 생긴다. 낱말 하나에, 인간사의 긴요하고 아름다운 핵심이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기만 해도, 말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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