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에서 소방설비는 중요한 안전장치다. 화재의 치명적 위험성은 이미 영화 '타워링'을 통해 충분히 알려졌다.
그렇다면 건축물을 시공하는 과정에서 소방설비 설치작업 주체를 건축시공사와 별도로 두는 것이 적합한 것일까? 최근 이와 관련한 논란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 16대 국회를 비롯해 과거에도 수차례 논의된 적이 있지만 실효성 문제로 모두 폐기된 바 있다. 주된 이유는 건설현장 관리가 어려워지고, 시설물의 안전사고나 재해 발생 우려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소방설비는 재해나 안전 측면에서 하자 책임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국내 실정을 보면 대다수 소방설비업체가 영세해 폐업이나 부도위험이 매우 높다. 통계를 보면 소방설비업체 중 10년 이상 존속하는 업체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분리시공토록 하면 영세한 소방설비업체가 폐업한 경우 하자 책임자가 사라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통합 발주를 통해 종합건설업체가 소방시설에 대하여 안정적으로 하자보수를 책임지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또 스프링클러나 소화전, 제연설비 등 소방시설의 설계 및 시공은 복도나 계단, 출입구 등 건축물의 피난시설과 밀접한 연계가 이뤄져야 한다. 배관ㆍ전기ㆍ통신시설 등과 연계가 잘 되지 않는다면 화재 발생 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우려가 커진다. 재해가 발생한 경우 그 원인이 소방시설 때문인지, 아니면 건축공사 하자에 기인한 것이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소방 재해와 관련된 분쟁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소방설비공사 주체를 분리할 경우 건설사의 책임과 권한이 유리(遊離)되는 문제도 지적된다. 각종 재해를 방지하려면 소방설비의 설계 및 시공에 대해 건설사에게 관리 및 감독할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분리 발주되면 말 그대로 소방설비공사가 건설사의 지휘나 관리 체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소방시설이 부실하게 시공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만약 분리발주가 정책된다면 대형건물에서 소방시설의 부적합으로 화재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소방설비 시공에 전혀 관여치 않았더라도 건설사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소방공사의 분리발주가 소방설비업계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도 의구심이 있다. 분리발주 시에는 발주자가 직접 소방설비업자를 선정해야 하는데, 공공공사 입찰 문턱이 매우 낮아 부실업체가 난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기공사만 보더라도 1건 공사입찰에 무려 6210개사가 참여한 적도 있다.
이러한 여러 이유로 선진국에서도 소방설비공사를 분리 발주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선진국에서는 설계와 시공, 기자재 조달까지 통합 발주하는 턴키나 디자인빌드, EPC 방식 등이 확대되는 추세다.
소방공사업계가 그런데도 분리발주를 주장하는 속뜻은 결국 하도급 대금을 적정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공사대금 문제가 하도급 과정의 불공정에 기인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근 동향을 보면 무엇보다도 원도급 단계에서 적자 수주가 빈발하는 데 1차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최저가낙찰제가 적용된 500여개 현장의 조사 결과를 보면, 착공 단계에서 평균 4% 적자로 나타난 바 있다. 즉 하도급 대금 문제를 해소하려면 우선 적자 수주를 강요하는 발주자의 불공정부터 해소해야 한다.
공사비 문제를 발주 제도로 해결하려는 것은 권한과 책임의 분리, 하자보수책임자의 실종 등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국민생활의 안전 측면에서 소방공사의 분리발주는 바람직한 해법이 아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해서는 곤란하다.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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