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 넋이 난 것이다/한 점 온기도 남지 않은 앙금 같은 흰 재//또는 처절하도록 팽팽한 제 몸을 당긴 시위//저 부동은 어디에서 왔나 어디로 가는가//마른 연 줄기들 몸을 꺾은 겨울 방죽 가//오래전 고요한 외다리 왜가리
박남준의 '왜가리'
■ 넋이 난 것, 온기없는 흰 재, 팽팽한 제 몸을 당긴 시위, 저 부동. 네 가지 간결한 소묘에는 오래 고요히 들여다본 대상에게서만 읽어낼 수 있는 통찰이 있다. 시를 읽으면 어딘가에 가만히 앉아있는 박남준이 보인다. 아마도, 왜가리가 고개를 돌려 멀리 박남준을 바라보았다면 똑같은 시를 썼을지도 모른다. 침묵의 이쪽과 저쪽, 이 시 하나로 말없이 응시하는 양쪽을 우리는 보고 있는 셈이다. 왜가리는 가끔 정물(靜物)같다. 먹이를 노리고 있을 때조차도 그 삶은 엽서 속에 들어있는 사진 같다. 박남준은 '제 몸을 당긴 시위'라고 그 정적 속에 깃든 긴장과 역동까지를 읽고 있지만, 사실 그 새는 날 때조차도 저는 붙박이인 채 허공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나는 왜가리가 풍경을 정지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리 하나로 강을 움켜쥐고는 차가운 백색의 일점으로 시간과 공간을 얼어붙게 한다. 정녕 왜가리에 붙들린 풍경이다. 왜 이 새는 이토록 부동자세인가? 그의 외관은 어찌 이리 고즈넉한가. 보는 이를 숨멎게 하는 그 고요는 대체 누가 그에게 준 것인가. 그는 왜 거기 정물이 되어 있는가? 이렇게 쓰고있을 때 편집하는 후배 하나가 곁에 와서, 한 마디 뱉고 간다. "왜 가리? 먹을 게 있는데."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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