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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 박남준의 '풍란'

시계아이콘00분 45초 소요

풍란의 뿌리를 만진 적이 있다/바람 속에 고스란히 드리운 풍란의 그것은/육식 짐승의 뼈처럼 희고 딱딱했다/나무등걸, 아니면 어느 절벽의 바위를 건너왔을까/가끔 내 전생이 궁금하기도 했다/잔뿌리 하나 뻗지 않은 길고 굵고 둥글고 단단한/공중부양으로 온통 내민 당당함이라니/언제 두 발을 땅에 묻고 기다려보았는가/저 풍란처럼 바람결에 맡겨보았는가/풍란의 뿌리로 인해 세상은 조금 더 멀어져갔지만/풍란으로 인해 얻은 것이 있다/한 평 땅이 없으면 어떠랴 길이 아닌들/나 이미 오래 흘러왔으므로


박남준의 '풍란'


■ 나무 목(木)자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무의 상형(象形)이라면 글자가 거꾸로 서있어야 할 것 같다. 줄기는 하늘로 향하고 뿌리는 땅에 꽂혀 있는 게 정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줄기는 간략하게 한 줄로 처리하고 뿌리는 세 갈래로 내렸다. 왜 굳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뿌리를 표현하느라 공을 들였을까. 옛사람들은 식물이 가장 식물다운 것은 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까. 식물은 심어져 있는(植) 사물(物)이다. 이 또한 뿌리를 강조하는 말이다. 사시사철 우리를 놀라게 하는 줄기와 잎과 꽃과 열매는, 식물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뿌리다. 나무들이 태어난 땅바닥에서 한뼘도 움직이지 못하는 건, 저 뿌리가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엽(枝葉)들이 해를 향해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뿌리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풍란은 식물 중에서 별종이다. 땅에 숨겨야할 발들을 지상에 그냥 내놨다. 물을 구걸하지 않고 하늘에서 주는 물만 먹겠다는 오기다. 우린 자유에 묻어있는 저 바람냄새를 맡아야 한다. 초월의 대가는 고독과 불안과 뿌리없는 갈증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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