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 연곡사 뒤뜰에서 펼친 날개 접을 줄 모르는 새. 피아골 맑은 물에 비친 선홍색 단풍 비린 불길 미리 보았던 새. 밤나무 숲 가랑잎 지는 소리 울리는 이 골짝을 지키고 있는 맑은 노래. 터지도록 펼친 연화 꽃잎 위를 날고 있는 날개의 퍼덕임. 꿈의 실체는 섬진강 보드라운 잔모래 되어도 경주 논두렁길에서 처음 만났던 Kalavinka라는 낯익은 이름은 구름 한 포기 떠 있는 아함경 가을 하늘 높이를 날고 있다. 가릉빈가. 가릉빈가. 땅에서 태어나는 인간의 소망 날개를 펼치고 있다. 가을 바람 일던 서라벌 절터 찾던 날 환하게 펄럭이던 당신의 옷고름처럼 아름다운 날개 인적 사라진 구례 골짝에서 젓고 있다.
허만하의 '가릉빈가의 날개 - 연곡사 동부도 앞에서' 중에서
■ 시인 허만하가 구례 연곡사에서 인두조신(人頭鳥身)의 부처를 보고 열광한 것과, 내가 안압지에서 출토된 가릉빈가 무늬가 있는 수막새를 보고 꿈까지 꾸었던 것은, 어떤 인연일까. 새를 부러워했던 양인(洋人)들은 새처럼 날개를 퍼득여 날아가는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조익기(鳥翼機)는, 꽁무니로 방귀를 뿜어 날아가는 비행기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다. 새를 부러워했던 동양인들은 새의 날개가 돋아난 아름다운 인간, 곧 가릉빈가 부처를 만들어낸다. 새는 인간 비상(飛翔)의 최고 상징이다. 발 달린 자와 날개 달린 자의 길은 다르다. 이 지상의 길과는 다른 길, 무한으로 툭 트인 허공의 깊고 먼 길. 그 길로 안내하는 새가 가릉빈가다. 초월은 유연하게 지상에서 이륙하는 옛사람들의 공중부양술이다. 피단풍의 지리산 골짝을 굽어보는 새, 새의 깃과도 같은 기왓장 몇 장으로 남은 경주의 천년 영화(榮華)를 지나가는 새, 같은 새가 허만하에게서 빈섬에게로 앉았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