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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장정일의 '삼중당문고' 중에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0분 38초

열 다섯 살,/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문고/150원 했던 삼중당문고/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읽었던 삼중당 문고/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문고/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문고/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문고/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간 삼중당 문고/급우들이 신기해 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문고/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문고/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문고/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문고/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삼중당문고/방학중에 쌓아놓고 읽었던 삼중당문고/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장정일의 '삼중당문고' 중에서


■ 책의 시대는 감미로웠다. 누렇게 바랜 책종이 속에는 작은 벌레들이 살았고 그것을 후우 불어내면서 읽었던 시절이었다. 책의 크기가 작았고 책값이 겸손했기에 무엇인가 읽고싶은 욕망에 시달리던 가난한 이들에게 쏙 들어온 삼중당문고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사이에 이 땅의 양식(良識)이 되었고 내밀한 경험이 되었고 삶의 지문이 되었고 마음의 행간이 되었다. 장정일의 인생 파란만장의 낱장낱장으로 끼어든 삼중당문고는 그의 삶과 무시로 간담(懇談)해온 절절한 문우(文友)였으리라. 이 시를 소리내어 읽으며 가슴에 돋아오르는 무엇,이 있다면 당신도 필시 삼중당문고 출신의 사람이리라.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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