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시는 물에다 써야 한다/출렁임으로/다만 출렁임으로 완성이어야 한다//위험한 거미줄에 걸린/고통과 쾌락의 악보/사랑시 한 줄의 이슬 방울들/저녁 물거품이 상륙하기 전의/꿈같은 신방//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면/이윽고 썰물을 따라/가뭇없이 사라지는 물거품의 가락으로//사랑시는 물에다 써야 한다/물에서 태어나고/사라지는 물의 시집이어야 한다
문정희의 '물의 시집'
■ 문학(文學)을 이룩한 것은 종이다. 종이가 발명된 뒤 글자를 그 위에 쓰는 방법들이 생겨났다. 문학이 종이에 붙어있었을 때, 우리는 종이가 문학인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벽에 쓰고 돌이나 금속에 새기기도 했지만, 그것은 종이로 된 문학의 스페셜 에디션일 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이탈사건이 벌어졌다. 컴퓨터 속에서, 혹은 인터넷에서 시를 쓰는 일. 그것은 종이에서 훌쩍 이륙해버린, 문학의 해탈같은 것이다. 더 이상 시집이 종이를 묶은 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때, 시 또한 종이를 탈피한 순정한 무엇이 된다. 문정희는 물에 쓰는 시를 말한다. 시가 물을 입을 때, 시는 물이 되고 물을 타며 물처럼 출렁거리며 물처럼 맺히며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물은 시를 담는 미디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시이다. 물의 속성을 빌어, 시는 사랑을 가장 생동감있게 붙잡아내지 않는가. 감정의 출렁임, 거미줄에 걸린 고통과 쾌락의 물방울,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 썰물과 물거품. 시가 문자가 아니라 문자를 넘는 원천적인 정수(精髓)이고자 하는, 시인의 무한갈망. 물 위에 시를 쓰는 존재는, 사실 사람이 아니라 조물주가 아닌가. 문정희가 꿈꾸는 것이 금역(禁域)임을 알겠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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