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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임보의 '팬티'

시계아이콘00분 36초 소요

그렇구나/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그 주변을 맴돌며 한 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보라//참배객이 끊긴,/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보라/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봐/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남자들의 팬티를!


임보의 '팬티'


■ 문정희의 시를 읽고, 답시로 쓴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예찬이야 나무랄 데 없지만, 굳이 남자를 들러리로 세워 평생 '신전'을 맴도는 관광객으로 묘사한 것에 발끈했나 보다. 치마군단에 맞서는 부대를 바지군단으로 하지 않고 '팬티군단'을 선택한 것이, 임보의 탁월한 전략이다. 신전이며 갯벌궁전이라고 황홀해 하지만, 거기가 참배객도 관광객도 끊어진 곳이라면 얼마나 적막하겠느냐고 여존남비를 뒤집어놓는다. 그리고 열쇠를 꺼낸다. 천하의 명품 대문이라도 열쇠 없으면 말짱 황이다. 그 열쇠보관소, 팬티! '치마 신전' 관광객의 맹렬한 일갈도 만만치는 않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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