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 도전을 준비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겠다는 야심찬 승부수를 던졌다. 택시 요금을 올려 '택시 민심'을 잡는 동시에 서비스를 개선해 시민들의 복지도 증진시키겠다는 '10.2 택시 서비스 개선 대책'이 바로 그것이다.
◇ 뜨거운 감자 '택시 요금 인상'
택시 요금 인상은 사실 재선 도전에 나선 민감한 시기에 서울시장 입장에서 던지기 어려운 카드다. 우선 택시 요금 인상은 시민들에게 주는 부담이 크다. 실제 오는 12일 새벽 4시를 기해 서울 택시 기본요금이 2400원에서 3000원으로 오를 경우 시민들이 더 내야 하는 택시요금은 상당한 규모다. 서울시청역에서 홍대입구(6.7km)까지 기존엔 5700원을 내야 했던 택시비가 6300원으로 오르고, 같은 곳에서 강남역(11.4km)까지는 기존 8900원에서 9600원으로 올라 700원을 더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서울과 인접한 성남ㆍ과천ㆍ의정부ㆍ안양 등 경기 11개 지역의 시계외할증요금도 부활된다. 여기에 운행거리 2km 초과운행시 붙는 거리요금도 144m당 100원에서 142m당 100원으로 오른다. 이에 따라 서울시청역에서 일산 호수공원까지(39.3km, 시내 26.6km+시외 12.7km)는 기존 2만8300원에서 3만980원으로 오르고, 서울시청역에서 분당 서현역(46.9km, 시내거리 27.3km+시외 19.6km)까지는 3만3600원에서 3만7360원으로 4000원 정도를 더 부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역대 서울시장들이 택시 요금 인상을 단행하면서 "승차 거부를 없애는 등 서비스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질 낮은 택시 서비스에 시달리게 된 시민들은 "돈만 더 낸다", 사납금 인상 등으로 요금 인상의 혜택을 거의 못 본 택시기사들도 "사장들 좋은 일만 해줬을 뿐"이라며 불평을 터뜨리는 상황이 계속돼 왔다.
오세훈 전 시장의 경우 2009년 5월 택시 요금을 올리면서 '브랜드 택시'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해치 택시' 등을 도입해 서비스를 향상시키겠다고 했지만 효과는 없었고 서울 시내 주요 도심은 여전히 승차 거부의 '천국'이다. 2006년 7월에도 택시 요금 인상과 함께 각종 서비스 향상 대책이 발표됐지만 현실은 그대로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박 시장은 택시 요금 인상이라는 정면 승부수를 던졌다. 박 시장 입장에선 내년 지방선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택시 민심이 '안티'로 돌아선다는 것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박 시장은 지난 2011년 보궐 선거에서 당선될 때만 해도 개인택시조합ㆍ법인택시노조 등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취임 후 1년 10개월 여 만에 "택시 기사들에게 찍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택시 기사들로부터 원망을 사왔다. 취임 후 택시 서비스 개선을 통한 시민의 교통 편의 증진을 위해 일단 요금 인상을 자제하는 한편 승차 거부 강력 단속, 심야 버스 운행 등의 정책을 강력 추진했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들은 이에 심야버스 운행 중단ㆍ개인택시 증차 등을 요구하며 서울시청사에서 1인 시위를 하는가 하면 한때 박 시장의 혜화동 공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여는 등 집단 행동을 벌였다. 시도 최근 택시 광고판 크기 2배 확대, 심야 할증 적용 시간 1시간 앞당기기 등의 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성난 택시 민심 달래기에 나섰지만, 별 무소용이었다.
이와 함께 택시 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도 시가 이번 대책을 발표할 수 밖에 없었던 주요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6월 다산콜센터에 접수된 택시와 관련된 교통불편신고는 1만8540건으로 이 중 승차거부가 7010건(37.8%)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 신고건수는 전달(1만5579건)보다 19% 늘었고, 승차거부 신고도 전달에 비해 1130건 더 접수됐었다.
이에 시는 결국 유류 가격 인상을 반영해 택시 요금을 올려 택시 업계를 달래는 한편 동시에 강력한 서비스 개선 대책을 펼쳐 시민들의 택시 서비스 불만을 달래야 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 서비스 개선, 이번에는 될까?
이번 서울시의 택시 요금 인상을 두고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바로 시가 약속한 서비스 개선이 실제 이뤄질 것인가이다. 사실 서울 시내 주요 도심에서 심야에 택시를 잡다가 승차 거부를 당해 본 시민들이라면 요금이 다소 오른다고 하더라도 택시 서비스가 개선된다면 감내할 수 있다는 반응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번만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며 택시 서비스가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이번에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핵심 조치인 택시 기사 처우 개선문제에 진전이 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실제 서울시는 택시 서비스가 나아지지 않는 핵심 이유가 운수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 때문이라고 보고 택시 업계 노사와 상의해 이번 택시 요금 인상분의 상당액이 택시 기사들에게 돌아가도록 조치를 해 놓은 상태다. 택시 노사간 협의를 거쳐 택시 기사들의 월 정액 급여가 126만원에서 153만원으로 27만원 인상되도록 했고, 유류 비용도 실사용량 수준인 35리터까지 회사에서 지급하도록 했다. 특히 사납금 인상분(1일 기준 10만5000원→130만원, 2만5000원↑)의 84%를 택시 기사 처우 개선에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여기에 택시 미터기의 조작과 승차 거부를 불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한편, 승차 거부가 가장 심한 야간 시간 대에 심야버스 운행을 9개 노선으로 확대했다. 택시 노사가 자율 계도도 하도록 했고, 만약 승차 거부를 했다가 적발되면 현재 4시간의 친절 교육을 받도록 돼 있는 것을 앞으로 40시간까지 교육 시간을 늘렸다.
이같은 서울시의 택시 서비스 개선 대책은 사실 지난 6월 '택시 현장시장실'을 차려 놓고 하루 종일 택시를 타고 다니며 서울 택시의 현실을 체감한 박 시장의 작품이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지난 2일 "택시기사, 승객들의 의견을 듣고, 가스 충전소, 택시회사 심지어 기사식당까지 찾아가 들은 택시의 현실은 한숨 그 자체였다"며 "택시 기사는 택시 기사대로, 승객은 승객대로 택시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고, 불신이 팽배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4년간 유류비가 40% 넘게 올라 허리가 휘고 있는 기사님들을 생각하면 요금을 인상해야 했고, 승차 거부, 불친절 등으로 택시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시민들을 생각하면 인상은 언감생심이었다"며 "어렵게 결단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만 택시가 살고, 시민들의 발이 안전해 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먼저 운수종사자 처우 개선을 하고, 그 후에 요금을 인상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마지막으로 "서울의 얼굴, 시민의 발인 택시, 반드시 혁신하겠다. 시민들이 편안하게 탈 수 있는 택시, 기사님들이 보람있게 일 할 수 있는 택시, 택시 업계가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택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같은 서울시의 택시서비스개선 대책에 대해 시민ㆍ택시ㆍ전문가 등의 입장은 미적지근하다. 한 교통 전문가는 "택시 서비스 질 저하의 주요 원인이 택시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서비스 개선 대책은 핵심을 제대로 짚은 셈"이라면서도 "이번 요금 인상과 서비스 개선 대책이 시민의 입장에서 피부에 느껴지는 택시 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일궈 낼 수 있을지 여부는 서울시의 강력한 정책 추진과 택시 업계 노사의 자율적인 노력에 달려 있을 것"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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