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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시선]과거 청산, 구조적 수탈의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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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시선]과거 청산, 구조적 수탈의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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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헌법재판소 창립 25주년을 맞아 실시한 조사에서 '친일재산 몰수 규정 합헌 결정'이 지금까지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 중에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과거청산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다. 5공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번 정권이 레임덕에 이르기 전까지는 MB청산도 사회적 어젠다가 되겠지만, 그 뿌리에는 일본강점기의 잔재가 도사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프랑스가 비시정권을 단번에 숙청했다면서 우리나라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단순 비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 우선 독일 제3제국의 괴뢰정권이었던 비시정권은 길게 보아도 불과 4년이었고, 일제 강점기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35년이다.

독일의 나치정권은 그 중간 기간인 12년을 지속했다. 전후 철저한 반성을 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 내부와 주변국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일 역시 이 12년을 바로 청산하지 못하고 68운동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미 20여년 후, 즉 부역자들이 모두 은퇴한 때이다.


4년은 가볍고 12년은 무겁다. 12년에 대한 인적 청산으로 인한 공백은 한 국가와 사회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35년, 을사조약부터 보자면 40년이다. 같은 과거청산이 아니다.

그렇다면 청산의 대상은 무엇인가. 청산돼야 할 과거는 무엇인가. 세상에 생겨나서 그냥 없어지는 것은 없다. 나쁜 것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그 의미도 변하고 이에 대한 방도도 달라져야 함은 당연한 사물의 이치이다.


90년 전 9월1일에는 관동대지진이 있었다. 그 사흘 후인 오늘쯤에는 일본인들의 발작이 극에 달했으리라. 희생자가 누군지, 책임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조선인 수천명이 학살됐으리라는 추측뿐이다. 진상규명에 대한 공식적인 요구조차 없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들이 사죄하면 우리는 용서할 용의가 있는가. 어차피 일본의 온 국민과 친일파가 뜻을 모아 진정으로 사과-할 리도 없지만-한다고 해서 칼칼하게 끝낼 수도 없고, 더욱이 '돈 몇 푼' 받고 용서할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조선에 건너와 온갖 수탈을 자행하던 일본인들, 그리고 그에 부역해 이득을 취하던 조선인을 무덤에서 꺼내 부관참시를 하겠는가, 혹은 그들의 후손에게 복수를 하겠는가.


진실을 밝히는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명단에 이름 적어 침 한 번 뱉는다고 청산되지는 않는다. 요즘 화산과 지진으로 지각이 들썩들썩한다 해도 지진해일(쓰나미) 때문에 흔히 말하는 대로 열도침몰을 바랄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그저 그때처럼 미치지나 말기를 바랄 뿐이다. 상징적 사건을 되뇌는 것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내부의 발전 동력을 끌어내기 위한 계기일 때 의미를 갖는다.


청산해야 할 것은 '그들'이 과거에 만들어 놓은, 그러나 현재도 살아남아 '우리'를 옭죄는 과거이다. 예컨대 후진적 군대문화나 정경유착과 같이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라 생각하는 것의 근원을 파고들면 대부분 일본 강점기, 즉 국가주권 없이 수탈이 구조화된 시절에서 비롯해 군사독재를 통해 이어져 온 것이다.


이 정신적ㆍ재산적 수탈의 구조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실어온 맹목적 민영화를 통해 지속되고 있다. 그 본질은 공동체의 의사를 결정하고 그 집행을 통제할 메커니즘의 공백을 파고드는 것이다. 제도의 빈틈을 노리거나, 심지어 제도에 허점을 만들어 놓으려 드는 자들이 있다. 그들이 공동체를 위한 몫으로 정해진 공금을 '누가 먹어도 먹을' 공돈으로 알고 빼내려 기회를 노릴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과거청산은 구조적 수탈의 청산이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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