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세금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100달러 지폐에 나와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말이다. 최근 이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나왔다. 탈세수법이 날로 진화하면서 프랭클린의 말이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김덕중 국세청장이다. 징세의 엄격함을 강조한 프랭클린의 말을 징세 총책인 국세청장이 부인하고 나선 것은 아이러니다.
김 청장의 말처럼 탈세는 날로 교묘해진다. 세금을 피해 멀리 중남미 외딴 섬까지 달려간다. 하지만 프랭클린의 금언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대다수다. 봉급쟁이가 그 대표다. 명세가 훤히 드러나는 월급, 그것도 회사에서 세금을 뗀 후에 내어 주니 탈세는 꿈도 꿀 수 없다.
주변머리 없는 봉급쟁이의 한 명으로 평생 세금에 무신경한 나에게 얼마 전 세무서 발신의 등기우편이 날아왔다. 매월 근로소득세를 꼬박꼬박 냈고, 숨겨 놓은 땅도 없는데 웬 세무서 편지인가. 봉투를 뜯었다. 느낌이 다르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종합소득세 과세자료 해명안내문>. '세금을 물리겠으니 이의 있으면 해명하라'는 요지의 통지였다.
안내문을 읽어 나갔다. '2010년 소득을 2011년 5월 말까지 확정 신고해야 했는데 신고하지 않았다. 무신고에 따른 과세자료 발생처는 회사(월급), S대학(강사료), 전문지(원고료) 3곳.' 납득하기 어려웠다. 월급과 시간 강사료는 물론 소액 원고료까지 세 공제 후에 받았고 연말정산도 거쳤다. 합쳐봐야 근로소득세 누진 구간을 넘어설 만한 금액도 안 된다. 왜, 얼마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세무서 소득세과의 여성조사관은 나긋한 목소리로 나의 무지를 일깨웠다. "원천징수를 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복수의 소득이 있으면 다음 해 5월에 종합소득신고를 해야 합니다. 기 납부 세금에서 중복된 법정공제를 정산해 종합과세합니다."
해야 할 신고를 안 하고, 낼 세금을 안 냈다면 이유 불문 잘못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도 짚어야 할 대목이 남았다. 얼마를 내야 하나. 조사관이 알려 준 세액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산출 근거는 거듭 나를 놀라게 했다. 자책으로 숙여졌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화가 났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과도한 페널티다. 종합소득세(종소세) 신고 기간 종료 즉시 20%의 무신고 가산세가 붙는다. 그것은 시작이다. 세금을 낼 때까지 매일 1만분의 3%(연 11%)씩 납부불성실 가산세가 추가된다. 딱 1년이 지나면 가산세가 총 31%에 이른다. 지금같은 저금리 시대에 연 31%라니(사채 법정 제한금리도 30%다!). 2010년 귀속 종소세를 확정하니 총 가산금이 44%에 달했다.
둘째는 고의 또는 태만이 의심되는 뒷북 행정. 2010년 종소세를 1년 내에 알려 줬다면 2011년 및 2012년분은 정신 바짝 차리고 제때 신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통지서는 2012년 신고 종료 직후에 나왔다(그것도 2010, 2011년분이 함께 왔으니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겠는가). 결국 3년간 각각 무신고 가산세 20%와 누적된 불성실 가산세를 물어야 했다. 청와대 참모의 말대로 납세자가 '거위'라면 나는 뭘까. 국세청이 맘 먹고 키워 깃털을 뭉텅이로 뽑은 만만한 거위가 아닐까.
그후 근소세법 개정안 파동이 일어났다. 샐러리맨들이 한 달 세금 1만3000원에 그렇게 흥분한 것은 아니다. 더 열 받은 것은 '중산층'이니 '거위 깃털 뽑듯' 세금을 거둔다느니 하는 오만함이 묻어나는 고위 공직자들의 말이다.
세금을 숙명으로 생각하는 봉급쟁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세정은 달라져야 한다. 납세자의 마음에 다가서라. 유리봉투 과세하듯 진짜 큰 세금 도둑을 일망타진, 빠짐없이 세금을 물려라.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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