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이집트는 한때 '포스트 브릭스' 국가 가운데 하나로 각광 받았다.
'브릭스(BRICs: 브라질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라는 용어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처음 만든 것이다. 골드막삭스는 2007년 4월 '브릭스를 넘어'라는 제하의 보고서에서 이집트까지 포함한 포스트 브릭스 11개국을 선정한 바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쫓겨난 뒤인 2011년 9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계열 경제조사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포스트 브릭스로 '시베츠(CIVETS)'를 언급하며 이집트에 주목하라고 권했다.
시베츠는 세계 경제성장 동력으로 떠오를 6개국, 다시 말해 콜롬비아ㆍ인도네시아ㆍ베트남ㆍ이집트ㆍ터키ㆍ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 만든 신조어였다.
당시 이집트의 민주화 이행이 더 많은 투자와 관광 수입 증가로 이어지리라 예상됐다.
그러나 2년여만에 꿈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미국 경제주간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현재 이집트에서 진행 중인 극도의 정국혼란은 경기침체와 외국인 자본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부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로 이집트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의 현 정국 혼란은 2011년 1월 무바라크 대통령 퇴출 당시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은 뿌리 깊은 이슬람 원리주의와 세속주의 세력이 정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민주화 시위 때는 독재 권력에 맞서 원리주의와 세속주의가 협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양대 세력이 각자 이익을 위해 충돌하고 있어 이집트 사회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내전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집트는 이미 내전 상태나 다름없다. 이집트 정부는 최근 나흘 동안 계속된 유혈사태로 8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반면 친(親)무르시 세력을 이끌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은 이보다 많은 약 2600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금융업체 노아 캐피털 마케츠의 에마드 모스타크 투자전략가는 "이집트 상황이 훨씬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형제단으로 대변되는 이슬람 원리주의가 이집트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며 "이들이 2011년 독재에 저항한 혁명 당시보다 훨씬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2011년 혁명 세력과 달리 지금의 파벌주의 세력들은 공권력으로 통제하기 힘들 듯하다"고 내다봤다.
이집트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ETX 캐피털의 이샤크 시디키 투자전략가는 "올해 1.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던 이집트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며 "현재 13%인 실업률은 올 연말 15%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이집트 경제에서 11%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산업에 이번 사태로 치명상이 생길 수 있다. 이집트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테러 표적이 될 것이라는 불안감 탓이다. 이집트 관광산업의 매출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 퇴출 이후 계속 줄고 있다.
모스타크 투자전략가는 "수출 기업과 관광산업의 타격으로 정부 수입도 줄 것"이라며 "이로써 이집트 전반에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요즘 내전 우려에 이집트 화폐를 달러로 교환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데다 외국인 자금은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크레딧디폴트스왑(CDS) 관련 정보 제공업체 CMA에 따르면 이집트는 현재 세계에서 부도 가능성이 가장 높은 10개국 가운데 하나다. 이집트의 외환보유고는 2011년 1월 이래 절반 이상 줄었다.
무르시 전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축출된 지 나흘 뒤인 지난 7일 국제 신용평가업체 피치는 이집트의 국가신용등급을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 중에서도 가장 낮은 'B-'로 강등했다. 아프리카 펀드의 래리 세루마 매니저는 "이집트 유혈충돌로 희생자가 는만큼 경제적 어려움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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