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짐승들의 사생활-9장 어둠 속의 두 그림자 (158)

시계아이콘01분 32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뉴스듣기

짐승들의 사생활-9장 어둠 속의 두 그림자 (158)
AD


가까이 가자 어둠 속에서 얼굴이 분명하게 보였다. 역시 이장 운학이었다. 그의 눈은 분노에 가득 차있었다. 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돌아서서 하림이 가까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림이 열 발자국 쯤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서자 운학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나쁜 새끼!”
낮고 싸늘한 목소리였다. 분노를 억제하느라 그랬는지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언지 모르지만 그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오해요!’
하림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럴 틈도 주지 않고 운학은 다시 몸을 획 돌려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림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잠시 우두커니 서있던 하림 역시 그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나쁜 새끼!’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 울리는 것 같았다. 짧지만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이장 운학의 가슴 속에 들끓어대고 있었을 감정이 여과없이 하림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리곤 돌아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구부정한 등과 어깨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남경희를 바래다주러 갈 때처럼 바람은 여전히 소리 내어 불고 있었고, 저수지는 검은 빛을 반사하며 누워 있었다. 저수지에서 간간히 맹꽁이 우는 소리 같은 게 들렸다.
무슨 말을 붙이고 달만한 여지도 없었다. 하림은 그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절룩거리며 걷는 운학의 걸음걸이 보조를 맞추려고 하림도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두 사람은 왔던 길로 다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바람 부는 밤중의 둑길 위로 걸어가는 두 사람.
한 사람은 화가 잔뜩 난 채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사십대 중반의 늙수레한 사내였고 한 사람은 그 뒤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천천히 따라가는 삼십대 중반의 사내, 하림 자기였다.
생각하면 우스웠다. 그가 화난 게 만일 남경희 그녀 때문이라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랑 그녀는 정말이지 오해를 받을 만한 사항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녀가 찾아와서 그야말로 하소연 겸 넋두리를 하다 간 것이었고, 자기는 그것을 들어준 것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오해란 게 꼭 이해를 거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해가 이해를 거쳐 삼해, 사해,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라면 그건 이미 오해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오해는 그냥 오해일 뿐이었고, 그건 오해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이었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장 운학이 무언가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건 보통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이 동네의 이장이었다. 그의 협조와 호의가 없다면 이곳에서 지내기가 보통 불편한 노릇이 아닐 게 틀림없었다.


오해를 풀려면 대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화가 잔뜩 난 채 걸어가는 그의 등 뒤에 대고 무슨 말부터 꺼내어야할 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괜히 잘못 말을 꺼내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처럼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 되기 십상이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김영현 기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