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배고픈 국민'이 먼저인가, '배 아픈 국민'이 먼저인가.
출범 반 년째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창조경제와 고용복지 어느 쪽에서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 지금, 경제민주화에 눈돌릴 여유가 있는지 되묻는 목소리가 적잖다. 경제민주화 속에 소원해진 기업과의 관계부터 챙기라는 고언(苦言)도 있다.
박 대통령이 정권 출범 5개월만에 전격적으로 비서실장을 포함한 미래전략수석, 고용복지수석 등 비서진의 절반을 교체한 건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근혜노믹스'의 핵심 키워드인 일자리와 창조경제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 2011년 2분기 이후 9분기만에 처음으로 0%대 성장에서 벗어났지만 회복세를 말하긴 멋쩍다. 1%대에 턱걸이한 2분기 성장률은 한국은행이 추정한 잠재성장률(3.8%)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분기 성장률은 그나마 시장의 힘으로 보기도 어렵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한은을 압박해 돈을 푼 결과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의 효과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장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경기 회복세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2분기 광공업 생산은 전기보다 1.4% 줄어 1분기(-0.9%)보다 감소폭이 확대됐다. 같은 기간 전기대비 설비투자도 1.6% 줄었다. 전기(-4.5%)보다 감소폭이 줄었다지만, 정권 초 기업의 투자 안배 성향을 고려하면 새로울 것도 없다. 소비 심리를 반영하는 소매판매 지수는 전기보다는 나아졌지만 회복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이다.(0.4%)
결국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펴게 하는 데엔 기업의 협조가 절실하다. 한은은 이슈노트를 통해 기업심리와 실물지표 사이의 인과관계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한은은 "기업심리 악화가 경기 부진을 낳고, 부진한 경제지표가 다시 기업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부진한 실물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얼어붙은 기업들의 투자심리부터 매만져야 한다는 결론인 셈이다.
문제는 대선 승리의 힘이 됐던 경제민주화 약속이다.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특성상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공약은 후퇴하거나 물러서기 힘들다. 근혜노믹스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는 '을의 분노'를 분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남양유업 사태는 갑의 횡포에 경종을 울렸지만, 상황을 지켜보는 기업들의 시선은 복잡했다. 상법 개정안 역시 뜨거운 감자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 투명한 지배구조를 강조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킨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당정청은 결국 법안의 수위를 낮추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서서히 옅어진 경제민주화 기조가 더욱 퇴색될 경우 '약속의 박근혜'라는 정치적 자산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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