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속도 (1: 5 중간 모형), 1969년. 미국 미시건주 그랜드 래피즈시에 설치된 15미터 높이의 공공조각 <거대한 속도>를 제작하기 위해 칼더가 5분의 1 크기로 만든 모형.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 삼성미술관 리움서 10월 20일까지.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공중에 거꾸로 서 있는 여성이 남성의 어깨에 몸을 의지한다. 철사와 나무 조각만으로 만든 서커스단의 곡예가 긴장감을 연출하고 있다. 15m 높이의 붉은색 거대한 조각은 정지돼 있지만 급류하는 물줄기를 연상시킨다. 강철판을 재단해 면과 면을 볼트로 연결하고 큰 면에 다시 작은 면을 길게 이어 정중동(靜中動)을 자아냈다.
움직이는 조각 '모빌(mobile)'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1898~1976년)의 작품들이다. 미술 교과서에 등장해 누구나 한번쯤 접해 봤을 법한 칼더의 '모빌(mobile)'과 '스태빌(정지된 조각, stabile)'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며 현대 조각의 혁신으로 꼽힌다.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은 뉴욕 칼더 재단과 함께 칼더의 전 생애를 조망한 110여점의 작품을 18일부터 오는 10월20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인다. 국내에서 열리는 칼더의 최대 규모 회고전이다. 모빌과 스태빌 외에도 칼더 예술의 근원이 되는 초기 철사조각 등 그의 조형적인 탐구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작업들이 소개된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미술을 접했다. 이런 까닭에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으나 결국 조각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는 동물과 사물의 움직임에 특히 주목했다. 뉴욕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동물의 움직임을 드로잉으로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즐겼다. 또 서커스를 무척 좋아하기도 했는데 졸업 후 1926년 파리로 이주하면서 모형 서커스인 '칼더 서커스'를 만들면서 철사조각을 조각의 재료로 실험한다. 당시 칼더는 몬드리안, 미로, 뒤샹과 같은 파리의 미술계를 이끌던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와 같은 최신 미술 경향을 접하게 되는데 1931년 움직임을 추상적으로 구현한 그의 첫 작품에 대해 뒤샹이 '모빌'이라고 명명함으로써 '모빌'은 조각의 한 분야로 태어나게 됐다. 칼더는 움직임을 나타내기 위해 처음엔 기계장치를 사용했지만 이후 천장에 매달아 움직이는 새로운 모빌을 제작한다.
'스태빌'은 모빌과 대비되는 듯하지만 실은 모빌의 한 부분이다. 1932년 파리의 비뇽 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칼더가 모빌을 발표했을 때, 이것을 본 조각가 아르프가 이전의 움직이지 않는 칼더의 철사 조각 작품을 보고 '스태빌'이라고 부른 데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그 이후 강철로 제작된 기념비적 추상 조각들도 스태빌에 포함됐으며, 이후 그의 공공 조각 작품들은 대지의 중력을 느끼게 해주는 스태빌의 한 형태로 입지를 굳히게 됐다. '모빌'과 '스태빌' 조각은 칼더의 예술적 재능과 동시대 아방가르드 미술, 움직임을 구현하는 공학적 지식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칼더는 파리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코네티컷주 시골마을에서 작업을 했는데, 이곳에서 석고와 청동, 폐깡통, 커피 캔, 파이프 등 다양한 재료와 새로운 형태들을 시도한다. 1943년 45세라는 최연소 작가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만큼 유명세를 떨쳤지만 그의 실험정신은 끝날 줄 몰랐다. 1960년대부터는 공공장소와 어우러진 대형조각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는데, 대형 철판을 자르고 볼트로 조립해 완성한 그의 작품은 현재 세계 도처의 광장과 공원에 설치돼 있다.
칼더가 추구한 예술 세계는 그가 남긴 말처럼 '움직임'을 공학적으로 표현한 '문학'으로 보여진다. "나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무게중심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균형을 잡아간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 모빌은 그저 움직이는 납작한 물체의 연속에 지나지 않지만, 다른 일부에게 모빌은 어쩌면 시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문의 02-2014-6900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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